고대로부터 1894년(고종 31) 6월 27일까지의 편년체(編年體) 역사서이다. 연월일의 연대순으로 우리 역사의 중요한 사실을 요약하거나 건명식(件名式)으로 적고, 그 기사가 수록되어 있는 원사료의 이름을 할주 형식으로 적어 놓았다. 이 책을 엮는데 우리나라·일본·중국과 서구의 것까지 총 4,950종의 문헌자료를 참고했다 한다.
이 책은 순수한 학문적 목적에서 편수된 것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 당국의 정치적 의도에서 편수되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원래 중추원에서 편찬하기로 한 조선사의 편수작업은 전문학자가 동원되어야 했기 때문에, 1922년 조선총독부 부설로 ‘조선사편찬위원회’를 조직해 원칙과 작업내용을 구상하도록 하였다. 1925년 편찬 실무를 담당할 조선사편수회를 출범시키고, 10월부터 조선사편찬에 착수하여 16년의 작업 끝에 1938년 『조선사』 전질을 간행하였다.
총목록 1권, 총색인 1권, 본문 35책 2만4111쪽. 1938년 전질이 간행되었다.
일제는 1910년 한반도를 강점한 뒤 ‘조선에 가장 적절한 신정(新政)을 실시하기 위해’라는 이름 아래 식민지 지배를 뒷받침할 시정자료의 조사사업으로 구관제도조사사업(舊慣制度調査事業)을 벌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민족사 왜곡의 원천적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즉, 고래로 “이합 친소의 변천이 있었으나 역사상 항상 밀접한 관계를 지속해 마침내 일한합방에 이르렀으나, 조선에는 아직 고금에 걸쳐 정확 간명하게 기술된 역사서가 없으니, 공정한 사료에 의거해 관청 및 일반이 참고할 수 있는 조선반도사를 편찬할 필요를 인정” 하고 1915년 7월부터 중추원(中樞院)에서 정사(正史)가 될 조선사 편수를 착수했다는 것이다.
공정한 사료에 의한 정확 간명한 조선역사의 편찬을 표방하고 있으나,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다음해 임명된 세 촉탁(囑託 : 京都帝國大學敎授 三浦周行, 同大學講師 今西龍 및 東京帝國大學敎授 黑板勝美)이 편술한 「조선반도사편찬요지(朝鮮半島史編纂要旨)」에 그 숨은 의도가 잘 나타나 있다.
즉, “여러가지 제도를 쇄신해 혼돈상태의 구태를 이혁(釐革)하고 여러 가지 산업을 진작해 빈약한 민중을 증제(拯濟)함은 조선의 시정상 당면한 급선무의 일이라 할 것이나, 이러한 물질적인 경영에 힘씀과 함께 교화·풍기·자선·의료에 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이 백성들의 지능과 덕성을 계발함으로써 충량한 제국신민으로 부끄럽지 않는 지위에 오르도록 부도(扶導)하기를 기하는 바이다. 이번에 중추원에서 명한 조선반도사의 편찬도 또한 민심 훈육(薰育) 한가닥에 보탬을 주고자 하는 취지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한민족을 충량한 일본제국시민으로 키우기 위해 한민족사를 다시 편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를 더욱 부연해 “조선인은 다른 식민지의 야만반개(野蠻半開)의 민족과 달리 독서속문(讀書屬文)에 있어 결코 문명인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사서(史書)로 보존되어 있는 것도 많고, 또한 새로운 저작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전자는 독립시대의 저술로 현대와의 관계는 빠져 있고 공연히 독립국의 옛꿈[舊夢]을 추상(追想)하게 하는 폐가 있다.
후자는 근대조 선에 있어서의 일청(日淸)·일로(日露)의 세력경쟁을 서술해 조선의 향배(向背)를 논하고, 또한 『한국통사(韓國痛史)』라고 불리는 재외조선인(在外朝鮮人)의 저서와 같이 사실의 진상을 규명해보지도 않고 함부로 망설(妄說)을 힘써 서술하고 있다. 이들 사적(史籍)이 인심을 고혹(蠱惑)하는 해독은 참으로 말할 수 없는 정도로 크다.” 고 하였다.
한국인에 의한 민족사서(民族史書)가 바람직스럽지 못한, 즉 민족적 독립심이나 키워주는 것이니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고 단정하고, 이것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서를 절멸(絶滅)의 방법을 강구함은, 다만 힘만 들고 공(功)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책의 전파를 격려하게 되는 일이 될지도 모르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구사(舊史)의 금압(禁壓) 대신에 공명적확(公明的確)한 사서로 바꾸어 놓음이 첩경(捷徑)일 것이며, 또한 효과가 더 현저할 것이다. 이것이 조선반도사(朝鮮半島史)의 편찬이 필요한 주된 이유인 것이다.” 결국, 식민지 통치에 부합되는 역사의식을 지닌 인간을 키워내기 위해 새로이 조선반도사를 편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사를 그들의 침략의도에 맞도록 왜곡 편찬을 서슴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이 책은 『조선사』라고 명명되었으나 문장으로 된 서술식 조선통사가 아니고, 연월일별로 주요한 역사적 사실을 간략하게 적기(摘記)하고, 그 기사와 관계되는 사료의 이름을 제시했을 뿐이다. 때문에 연구자의 편의를 위한 안내서적 사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다만, 1편 삼국통일 이전의 세 책은 원사료의 기사를 원문대로 수록했고, 4편에서 임진왜란 관계기사도 원사료를 그대로 싣고 있다).
할주를 이용해 그 사실과 관계되는 원사료를 추적하기에 편리하고, 때로는 원사료의 대용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또한, 색인이 있어 색인이 없는 원사료의 해당기사를 찾기에 편하다는 점도 있다. 그러나 편찬 의도가 식민사학의 기본 자료로 삼기 위한 데 있고, 이 책을 간행한 이후 관변 원사료의 일반 열람을 봉쇄해 한민족사 연구에 해독을 끼치고, 우리 사학자들의 민족사 연구를 크게 제약하는 부정적 구실을 한 역사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