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책. 안재홍은 민족주의 사학자 중 드물게 고등교육[일본의 조도전대학(早稻田大學)]을 받았다. 동제사(同濟社), 3·1운동, 신간회(新幹會), 조선어학회 등과 관련을 맺으며 독립운동에 나섰고 여러 번 투옥되었다.
또한, 조선일보 사장 재직시 신채호(申采浩)의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와 『조선상고문화사(朝鮮上古文化史)』를 지면에 연재하도록 하였다. 어릴 때부터 술사가(述史家)를 희망했으나, 일제의 강점으로 말미암아 정치학을 공부하였다.
1930년대 전시체제의 강화로 거듭 투옥되는 상황에서 ‘정치로써 투쟁함은 한동안 거의 절망의 일이오 국사(國史)를 연찬(硏纘)하야 써 민족정기를 불후(不朽)에 남겨둠이 지고한 사명임을 자임(自任)’하고 10여 년간 고대사 연구에 몰두해 이 고징서(考徵書)를 완성하였다.
반복된 투옥시기 동안 이 초고가 빈족(貧族)의 콩항아리 속에 묻혀 보관되었다. 광복 후 1947년 7월에 상권, 1948년 4월에 하권이 각각 출판되었다.
이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상권에는 ① 기자조선고(箕子朝鮮考), ② 아사달(阿斯達)과 백악(白岳), 평양, 부여변(夫餘辨), ③ 고구려건국사정고(高句麗建國事情考), ④ 고구려직관고(高句麗職官考), ⑤ 신라건국사정고, ⑥ 신라직관고략, ⑦ 삼한국(三韓國)과 그 법속고(法俗考), ⑧ 육가라국소고(六加羅國小考).
하권에는 ① 부여조선고(夫餘朝鮮考), ② ᄇᆞᆰᄇᆞᆯ, ᄇᆡ원칙과 그의 순환공식, ③ 고구려와 평양별고, ④ 백제사총고, ⑤ 조선상대지리문화고(朝鮮上代地理文化考) 등이다.
이는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나 정인보의 『조선사연구(朝鮮史硏究)』 같은 시대사와 그 연구 영역을 같이하고 있다. 또, 그는 언어학적 연구방법을 자주 쓰고 있는데 이 또한 신채호에게서도 보인다. 신채호와 정인보를 자주 인용하고 있지만, 그가 근대적 사회과학에 접촉했던 만큼 그의 연구는 독자성을 보이고 있다.
그는 고대사 연구에 사회발전단계설을 도입하였다. 즉, 앞서 열거된 단군조선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우리나라 고대사 연구는 고조선 사회가 사회발전의 단계를 거쳐 삼국시대로 발전해가는 과정을 규명하는 작업이었다. 따라서, 그가 사용한 언어학적 방법도 고대사회의 발전과정과 그 단계성을 파악하는 데에 원용되었던 것이다.
이 책에 나타난 안재홍의 우리나라 고대사 연구는 신채호나 정인보(鄭寅普)의 연구 영역과 발상에서 출발해 그것을 한층 심화시켰다고 평가된다.
또한 그가 활동하던 시대에 민족주의사학이 사회경제사학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었던 상황을 감안하면 후기의 민족주의사회학자로서의 그의 연구방법은 신채호 등 전기 민족주의사학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