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국경(國卿). 아버지는 수군절도사 조현범(趙賢範)이며, 어머니는 파성군(坡城君) 윤찬(尹贊)의 딸이다.
1524년(중종 19) 무과에 급제, 이듬해 선전관이 되고, 여러 차례 시사대회(試射大會) 또는 격구대회(擊毬大會)에서 우승하는 등 무인으로 명성이 높았다. 1535년 문관직으로 발탁되어 동부승지를 지내고, 1548년(명종 3) 광주목사(光州牧使)·종성부사 등으로 외보되었다.
1551년 경상좌도병마절도사 재직 중 사사(賜死)된 중종 때의 권신 김안로(金安老)에게 아부하였다는 탄핵으로 장단부사로 좌천되었으나, 1553년 관내의 도적을 일소한 공으로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전임되었다.
1555년 을묘왜변이 일어나자 전라병사 겸 방어사로 순변사 남치근(南致勤)과 함께 나주 일대에 침구한 왜적들을 소탕하였다. 뒤에 제2차 작전에서 적에게 허(虛)를 찔려 작전에 실패하자, 이로 인하여 관직을 박탈당한 채 녹도(鹿島)에 장류되었으나 1557년 장단부사에 다시 서용되고, 1561년 함경남도병마절도사, 1567년(선조 즉위년) 경기도수군절도사를 거쳐 포도대장·오위장·부총관 등을 역임하였다.
조안국은 절륜한 무예로 28세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고, 종성부사가 되었을 때 아버지 조현범은 회령부사로 재직하여 육진(六鎭)을 부자가 지킨다는 명성이 한때 높았다. 좌찬성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