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야기문 ()

조선시대사
문헌
조선 후기 한천병부가 조선시대 중요한 사건을 기사본말체 형식으로 적은 야사서.
문헌/고서
편찬 시기
1684년
편저자
한천병부
권책수
조야기문
표제
조야기문
소장처
장서각,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내용 요약

『조야기문(朝野記聞)』은 조선 후기, 한천병부(寒泉病夫)가 조선시대 중요한 사건을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 형식으로 적은 야사서(野史書)이다. 한천병부의 서문이 있는 『조야기문』 5권 5책본은 장서각본과 규장각본이 완본(完本)이다. 『조야기문』은 이동욱(李東郁이 독자적으로 편찬한 것으로 보기 어려우며, 후대에 한천병부가 『청야만집(靑野謾輯)』과 서문중본(徐文重本) 『조야기문』을 가지고 편집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의
조선 후기 한천병부가 조선시대 중요한 사건을 기사본말체 형식으로 적은 야사서.
저자 및 편자

서문에 “갑자년(甲子年) 9월(九月) 중구일(重九日)에 한천병부가 지었다.”라고 적혀 있다. 종래에는 이 구절을 근거로 5책본 『조야기문』을 한천(寒泉) 이동욱이 1684년(숙종 10)에 편찬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한천병부가 바로 한천 이동욱인지는 잘 알 수 없다.

서지사항

한천병부의 서문이 있는 『조야기문』 5권 5책본은 장서각본과 규장각본이 주1이며, 국립중앙도서관본은 주2이다.

편찬 및 간행 경위

한천병부가 편찬한 『조야기문』 5책본이 '조야기문'이라는 표제를 가졌지만, 서문중본 『조야기문』과 체재와 내용이 다르다. 권1~권3은 이희겸(李喜謙)이 편찬한 『청야만집(靑野謾輯)』 권1~권9의 내용과 상당 부분 중복된다. 권4와 권5의 일부 내용은 서문중본 『조야기문』과 같다.

따라서 5책본 『조야기문』은 이동욱이 독자적으로 편찬한 것으로 보기 어려우며, 후대에 한천병부가 『청야만집』과 서문중본 『조야기문』을 가지고 편집한 것으로 추정된다.

구성과 내용

5책본의 『조야기문』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 순으로 제책되어 있다. 권3에 해당하는 지(智)의 경우 장서각본 주3가 ‘동야기문(東野記聞)’으로 되어 있다.

5책본 『조야기문』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권1[인]에는 조선 왕조의 주4, 태조의 공적, 고려 말 동향, 방석(芳碩)의 난, 계유정난(癸酉靖難), 사육신(死六臣)생육신(生六臣), 무오사화(戊午士禍)를 실었다.

권2[의]에는 무오사화와 관련된 인물, 중종반정(中宗反正), 남곤(南袞) · 심정(沈貞)의 적폐, 조광조(趙光祖), 을사사화(乙巳士禍)를 실었다.

권3[지]에는 주5 · 주6의 분열, 인목대비(仁穆大妃) 유폐, 인조반정(仁祖反正), 이괄(李适)의 난(亂)을 실었다.

권4[예]에는 임진왜란정묘호란을 다루었다.

권5[신]에는 청나라 장수 용호(龍胡)의 내왕과 병자호란의 경과 과정을 다루었다.

권1~권3은 정치적 사건을 다룬 야사를 대략적인 시간 순으로 기록한 반면, 권4~권5는 집필의 성격이 전혀 달라져 특정 표제를 내걸고 이에 관련된 기록을 수집하고 있다.

의의 및 평가

이 책은 조선의 주7 왕인 목조(穆祖)로부터 병자호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사건의 본말을 정리하고 있다. 기록의 끝에는 인용한 전거(典據)를 주(註)로 제시하고 있다. 서문중본 『조야기문』과 함께 조선시대 정치사의 일단을 파악할 수 있는 보조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원전

『조야기문(朝野記聞)』

단행본

『朝野記聞(조야기문)(한국학자료총서 27)』(한국학중앙연구원, 2000)
이이화 편저, 『조선당쟁관계자료집 1』(여강출판사, 1988)

논문

박인호, 「『조야기문』에 대한 사학사적 고찰」(『됴야긔문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2007)
주석
주1

한 질을 이루고 있는 책에서 권수가 완전하게 갖추어진 책    우리말샘

주2

한 질을 이루는 책에 몇몇 권이 빠지고 없어 권수가 갖추어지지 아니한 책    우리말샘

주3

책의 이름을 속표지나 본문의 첫머리 따위에 적음. 또는 그런 제목    우리말샘

주4

출신, 태생, 유래의 뜻으로 보면 된다.

주5

조선 시대에, 북인(北人) 가운데 홍여순(洪汝諄), 이산해(李山海) 등을 중심으로 한 분파. 선조 32년(1599)에 홍여순이 대사헌이 되려 하는 것을 남이공(南以恭)이 반대하면서 북인에서 갈려 나왔다.    우리말샘

주6

조선 시대에, 북인(北人) 가운데 유영경(柳永慶), 남이공(南以恭), 김신국(金藎國) 등을 중심으로 한 분파. 선조 때 북인인 홍여순(洪如淳)이 대사헌이 되려고 할 때 같은 북인인 남이공이 반대하면서 홍여순 파와 갈라졌다.    우리말샘

주7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이에게 임금의 칭호를 주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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