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자신(子愼), 호는 독암(獨庵). 조온지(趙溫之)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익정(趙益貞)이고, 아버지는 조팽(趙彭)이며, 어머니는 이사손(李嗣孫)의 딸이다.
1516년(중종 11) 사마시를 거쳐, 1520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주서·부수찬·정언·수찬 등을 차례로 지냈다. 1524년 이조정랑에 천거되었으나 당대의 권신 김안로(金安老)의 반대로 좌절되었다가, 1526년 지평을 거쳐 비로소 취임하게 되었다.
그 뒤 장령·사간·전한 등의 관직을 역임하고, 1531년 사섬시정(司贍寺正)으로 재직하던 중 심정(沈貞)의 당여(黨與)라는 김안로의 탄핵으로 파직되어 과천에 물러나 있게 되었다. 1537년 김안로가 사사(賜死)되자 신원되고, 죽은 뒤 과천의 호계서원(虎溪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독암유고(獨庵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