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에서는 일찍이 외국에 나들이 갈 때면 비단옷을 입었다고 한다. ≪한원 翰苑≫에 의하면 고구려에서는 오색금·운포금(雲布錦)을 제직하였다고 한다. 오색금·운포금은 중국의 금명과 같은 것이어서 같은 양식의 비단이 고구려와 중국에서 제직되었음이 나타난다.
그러나 고구려에서는 백금(白錦)을 특산물로 제직하여 중국과 일본에 수출하였으며 중국에서는 고구려 백금의 제직양식을 배워 제직하기도 하였다. 조하금도 통일신라의 특산물로 869년(경문왕 9)에 당나라에 보냈다는 사실이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후량(後梁) 개평 2년(908)의 거란 조공물목에는 조하금이 있으며 그 다음해에는 운하금을 공납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이 조하금과 운하금은 우리 나라로부터 요하유역을 거쳐 거란으로 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일본의 텐지왕(天智王)과 텐무왕(天武王) 때에 신라에서 하금(霞錦)을 보낸 일이 있는데 일본에서는 이것을 운간조(繧0x9555調)의 간도(間道)와 같은 것이라고 보았다. 즉, 무늬가 채색된 염문(染紋)의 직물이라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태자간도(太子間道)’라고 명명된 쇼토쿠태자(聖德太子) 소용의 직물편을 하금의 일종으로 보고 있다. 이 태자간도는 붉은 바탕을 주색으로 하는 이카트(Ikat)직물이다.
≪사원 辭源≫에서는 조하를 육기(六氣) 중의 하나이며 해가 돋는 적황기(赤黃氣)라고 해석하고 있어 태자간도가 ≪사원≫의 하금 해석과 일치되고 있다. 이와 같은 일본의 해석을 종합한다면 조하금은 붉은색을 바탕으로 하는 평직의 염직물인 이카트의 일종인 것이다.
지조직이 평직인 점으로는 주(紬)로 판단되고, 채색된 무늬에 의하여 그 화려한 점으로는 금으로 판단되기도 하는 직물인 것이다. 그리하여 중국측 사료인 ≪책부원구 冊府元龜≫·≪당회요 唐會要≫ 등에 기록된 조하주와 ≪삼국사기≫의 조하금을 같은 직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통일신라의 직관에는 조하방(朝霞房)과 홍전(紅典)·소방전(蘇房典)이 있는데, 조하금은 조하방에서 홍화 또는 소방목으로 이카트염색이 되어 화려한 토산직물로 중국에 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인들은 자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희귀한 직물로 선호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