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삼은 신의주에서 지게꾼으로 일하면서 힘겹게 두 남매를 키우고 있다. 그는 3개월 전까지만 해도 농사를 지으면서 처자식과 함께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마에 이은 홍수로 제방이 무너져 수확할 곡식을 모두 잃어버리고, 산으로 피신한 아내가 졸도하였다가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아내의 죽음 이후 지주가 농채를 주지 않아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언삼은 두 아이를 데리고 신의주로 이주하였던 것이다. 첫째 아들 장손은 안동현에서 신의주로 사탕을 밀수하는 심부름을 하여 돈을 벌어 살림에 보태고, 둘째 딸 금녀는 아버지와 오빠가 일을 마치고 식량을 구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언삼의 가족은 극빈한 삶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었는데, ‘피날루’라는 별명을 가진 노파가 찾아와 아이 둘 달린 과부와의 재혼을 권유한다. 재혼 이후 여섯 식구의 호구지책을 걱정하면서도 언삼은 아이들에게 재혼할 뜻을 내비치는데, 장손이 못마땅해하는 눈치에 결국 노파에게 재혼을 거절하고 두 아이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다짐한다.
날씨가 추워지자 지게에 짐을 맡기는 손님이 줄어 하루 끼니를 위한 최소한의 돈도 벌지 못하게 되고, 어느새 아내의 졸곡제가 다가온다. 졸곡제 날에는 메밥이라도 지어 자식들과 나눠 먹는 것이 남편이자 아비의 도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내내 허탕만 치게 된다. 그러다 한 일본인의 짐을 싣고 그의 집으로 운반해 주게 된다. 집안에 짐을 옮겨주고 나오다 경대 위의 지갑을 발견한 언삼은 그것을 몰래 훔쳐 나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지갑 속에 든 돈으로 아내의 졸곡제를 치른다.
아이들이 잠든 뒤 술집에 들러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그는 순사의 걸음 소리에 놀라 도망쳐 집으로 간다. 집에 돌아와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고생 속에서 괴롭게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 언삼은 식칼로 아이들을 죽이고 자신도 죽고자 한다. 바로 그 순간 아내의 환영이 나타나 왜 아이들을 죽이려고 하냐고 책망하고, 언삼은 그 자리에 쓰러져 정신을 잃는다.
「졸곡제」는 지게꾼으로 전락한 농부의 극빈한 삶과 피폐한 일상을 그리고 있다. 일본인의 집에서 지갑을 훔친 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순사의 걸음 소리에도 놀랄 정도로 순박한 주인공의 성품과 함께 묵묵하게 농사를 짓던 농부가 농토로부터 유리걸식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극빈한 처지에 놓여 자식들을 죽이고 자신마저 목숨을 끊고자 하는 상황에서 아내의 환영이 나타나 졸도했다는 설정은 서사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이는 1920년대 중후반 신경향파 소설의 특징을 일정 부분 답습한 것으로, 정비석의 초기 습작의 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