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생기」는 1937년 5월 『조광』에 실린 이상의 유고작이다. 주인공 이상이 정희와의 밀접한 관계를 시도하나 번번이 실패하는 내용을 줄거리로 한다. 작가 자신의 예술적 실천 태도와 작품의 창작 방침을 드러내는 작가의 말이 본 서사와의 경계가 불분명하게 소설 앞부분에 포함되어 있다. 이상의 소설들이 보이는 ‘여성 지향성’과 ‘경쟁 심리’가 극단화되어, 그의 소설 세계를 종결짓는 의의를 갖는다. 이 작품은 다양한 방식으로 ‘미학적 자의식’을 구현함으로써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소설의 한 극단을 보여준다.
「종생기」는 주인공과 서술자, 작가 이렇게 세 명의 ‘이상’이 각기 자신의 말을 하는 구성을 취하면서, 청자 · 독자에 대한 의식이 작품의 주된 특징 중 하나로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작가의 말과 본 서사의 구분 또한 이중으로 이루어졌다. 작가의 말 부분에서는 작품을 쓰는 기본 자세와 구체적인 창작 방침, 기법 구사의 의도를 밝혀 일단의 예술론을 드러내고, ‘소녀’와 ‘나’의 설정 및 주인공 자신의 상태를 알리며 미문(美文)과 감상(感傷)에 주의하겠다는 다짐을 보인다. 이렇게 작품 내 세계의 내용과 창작 과정상의 내용을 뒤섞음으로써 작품 내외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창작 과정 자체를 작품의 불가분리적인 일부로 만들어, 모더니즘 소설 특유의 미학적 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그날 아침’ 작성 중인 유서들 때문에 끙끙 앓는데 소녀에게서 속달 편지가 온다. S와 헤어졌다며, 유혹과 협박을 섞어 만나자 한다. 거짓임을 알되 속고 말아 ‘환희작약’하며 이발소에 가서 맵시를 다듬는다.
정희를 만나 궁리 끝에 첫 발언을 던지나 대답이 없자 인사를 건네고 발길을 돌리고는 ‘종생(終生)을 치룬 것’이라 생각한다. 여러 상념에 이어 ‘실수의 철학’에 이르러 앞서 생각한 좌절을 몰아낸 뒤 정희를 다시 뒤따른다. ‘천우(天佑)의 호기(好機)’를 노리며, 14세 미만에 매음을 시작한 정희의 비천한 태생을 소개하여, 둘의 상황을 ‘가소로운 무대’로 바꾼다.
이상의 말에 정희가 답하자 주1에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정희가 문벌이니 에티켓을 말하자, 거듭된 실수에 ‘산호편(珊瑚篇)의 본의(本意)’를 잃었다 여겨 주2할 듯해 한다. 문단을 교란하려고 쓰던 ‘진기한 연장’이 소용되지 못함을 깨닫게 된 것이지만 주3의 고행’을 계속하여 다 알아들었다는 듯이 손을 얹은 채 흥천사 경내로 들어간다. 자신의 ‘고매한 학문과 예절’ 등을 내세우려 하자, 정희가 식상하다며 그만두라 한다. 음흉한 간계를 간파당해 일시에 기진하여 언덕을 내려오며 “의료(意料)하지 못한 이 홀홀(忽忽)한 「종생(終生)」 나는 요절(夭折)인가 보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후까지 싸워 보리라’며 흥천사 구석방에 들어선다. ‘접전 수십 합’에 패색이 짙어지자 ‘마지막 무장(武裝)으로 주란(酒亂)’을 부려 난리를 치다 정희의 스커트를 잡아 제치자 편지 한 장이 떨어져 집어 보고서 S에게서 온 것을 확인한다.
어젯밤에 S와 있다가 오늘 나를 만난 정희의 "공포에 가까운 번신술(翻身術)"(363쪽)에 혼도해 버린다. 눈을 떴을 때 정희는 가고 없다. 정희가 S에게 감으로써 ‘종생’은 끝났지만, 그녀가 지금도 타인과의 정사를 계속하며 그것은 자신에게 재앙이기 때문에 ‘종생기’는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종생기」는 작품 내외의 경계가 의미를 갖지 못하는 작품 세계를 선보임으로써 모더니즘 소설의 주요 특징으로 꼽히는 미학적 자의식에 해당하는 면모를 구현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주인공 이상과 서술자 및 작가의 3인이 주4됨으로써 서술의 중층성을 이루는 한편, 주5의 미학을 완전히 벗어난, 한국 근대소설계에서 독보적인 양상을 획득한 성공적인 모더니즘 소설에 해당한다.
「종생기」는 이상의 단편소설들이 공통적으로 보여 온 두 가지 특성, 즉 ‘여성(과의 성애) 지향성’과 ‘경쟁 심리’가 각각 매우 강렬하면서도 치밀하게 설정되어 서로 긴밀하게 엮이면서 작가의 소설 세계를 극점으로 몰아간다. 또한 소설사 및 문학사적 관점으로 넓혀서 볼 때 「종생기」는 1930년대 한국 근대소설계에서 모더니즘 소설이 한 축을 차지하는 데 크게 기여한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