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위(神虎衛)·흥위위(興威衛)와 함께 삼위(三衛)로 불린 듯하다. 삼위의 군사 수는 모두 32영(領)에 3만 2000명으로 전체 중앙군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좌우위는 보승(保勝) 10영, 정용(精勇) 3영 등 13영으로 1만 3000명의 병력을 보유해 이군육위 중 최대의 군단으로 편제되었다.
또한 좌우위는 다른 2위와 함께 국왕의 행차에 대한 호가(扈駕), 외국사신의 송영(送迎), 출정과 방수(防戍), 역역(力役)의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당나라의 좌우위 명칭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봐서 당나라와 같이 좌위·우위 둘로 나누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군편성 단위로 볼 때 좌우위는 제일 먼저 만들어진 것 같다. 즉 좌우 두 위는 육위가 형성된 뒤 좌우위 하나로 통합되어 남고, 나머지 오위는 분화 내지 첨가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그렇게 보면 988년(성종 7) 좌우군영을 설치했다는 사실은 곧 좌우위의 설치였고, 또 이것은 육위의 모체가 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후 중국의 제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성종은 지방호족들이 거느리고 있던 군대를 부병제(府兵制)를 통해 중앙정부의 지배 아래 놓으려고 995년 육위를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좌우위에 소속된 장병은 문종 때를 기준으로 하면, 최고지휘관인 상장군 1인 밑에 대장군 1인, 장군 13인, 중랑장 26인, 낭장 65인, 장사 1인, 별장 65인, 녹사 2인, 산원 65인, 위 260인, 대정 520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좌우위는 육위 중 가장 많은 대소군관을 보유하고 있어, 지휘관의 수도 전체 경군 중 단연 우월한 군단임을 알 수 있다. → 육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