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윤(左尹)이라고도 한다. 995년(성종 14) 고려초의 관계가 중국의 문산계(文散階)로 대치되자 관계는 향직으로 대치되었다. 향직 16계 가운데 6품의 하위에 속하여 서열은 11위였다.
국가왕실에 대한 유공자와 무산계 소유자, 군인·서리·양반·장리(長吏 : 향리) 및 여진의 추장 등에게 주어졌는데, 실직(實職)보다는 작(爵)과 같은 신분질서체제였다. 또한, 좌윤 이하에는 전정(田丁)이 지급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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