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7년부터 421년까지 재위하였다. 김질(金叱) 또는 김토(金吐)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5대 이시품왕(伊尸品王)이며, 어머니는 사농경(司農卿) 극충(克忠)의 딸 정신(貞信)이고, 비는 대아간 도령(道寧)의 딸 복수(福壽)이다. 취희왕(吹希王)의 아버지이다.
즉위한 뒤 용녀(傭女)와 혼인을 하고 그녀의 척당을 관리로 등용하니 나라 안이 소란하여졌다. 이 틈을 타서 신라가 가야를 치려고 모의하였다. 이때 박원도(朴元道)의 충고로 용녀를 귀양보내고 정치를 바로잡아 백성을 편안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