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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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성하는 물질의 종류와 특성, 그리고 이들 물질들의 형성과정, 구조, 역사 등을 다루는 학문. 지질과학.
이칭
이칭
지질과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지질학은 지구를 구성하는 물질의 종류와 특성, 그리고 이들 물질들의 형성과정, 구조, 역사 등을 다루는 학문이다. 지질과학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지질학 연구는 1884년 독일 지질학자 고체가 다녀간 후 시작되었다. 일제는 1900년을 전후하여 지질학자를 파견하여 지질과 광물자원 조사에 열을 올렸고, 지질과 광상(鑛床)에 관한 상세한 보고서를 펴냈다. 1946년 서울대학교에 이학부 지질학과가 설치되어 지질학 발전의 토대가 갖추어졌다. 현재 지질과학의 교수와 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곳은 전국적으로 총 15개교이다.

목차
정의
지구를 구성하는 물질의 종류와 특성, 그리고 이들 물질들의 형성과정, 구조, 역사 등을 다루는 학문. 지질과학.
연원 및 변천

독일 지질학자 고체(Carl C. Gottsche, 1855-1909)가 한국에 다녀간 1884년을 우리나라에서 지질학 연구가 시작되는 기점으로 여기고 있다. 이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지질학 학문의 발전상을 시기별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1. 여명기 (1945년 이전)

1945년 이전의 시기를 여명기로 구분하여 보면, 삼국시대부터 조선조 말까지 산업, 약재 및 장신구의 발달과 지진 및 화산활동에 대한 내용이 『삼국사기』, 『삼국유사』, 지리지 문헌 등에 단편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지질학적인 지식이 체계적으로 수립되지는 않았으나, 활용은 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1800년(고종 재임기간) 이후에는 일본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개인과 기업이 국내 광업 분야에 진출하였으며, 이에 따라 일본과 서구의 지질학자들에 의한 지질답사와 그에 관한 발표가 뒤따랐다. 따라서 이 때를 우리나라에서 지질학이 학문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시기로 볼 수 있다.

일본은 1900년을 전후하여 지질학자를 파견하여 지질과 광물자원 조사에 열을 올렸고, 상당히 자세한 지질과 광상(鑛床)에 관한 보고서를 펴냈다. 일제강점기에는 1918년에 조선지질조사소(지질조사와 광상조사, 1981년 한국동력자원연구소로 개칭)가, 1923년에 연료선광연구소(탄전조사와 선광연구)가 설치되어 조선총독부가 본격적으로 광상조사를 추진하였으며, 이에 따라 조선인의 광업기술자들이 배출되어 광복 후 우리나라의 광업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1. 태동기 (1945~1949)

일제강점기의 지질학 전공자는 그 수가 10여 명에 이르지 않았으며, 이들은 광복 후 학계에 지질학의 씨앗을 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광복 전 경성광산전문학교 광물학 교수였던 박동길(朴東吉)미 군정청에 의하여 1945년 11월에 설립된 상무부 지질광산연구소의 초대 소장에 취임하였으며, 정부수립 후 1949년 새로이 설립된 상공부 중앙지질광물연구소의 초대 소장에 임명되어 연구소 발전에 공헌하였다.

1946년 8월에 국립서울대학교에 이학부 지질학과가 새로이 설치되어 명실공히 지질학 발전의 토대가 갖추어졌다. 대한지질학회는 1947년 4월에 창립이 되었다. 그러나 서울대 교수진의 수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연구시설이 열악한 상태였고. 상무부 지질광산연구소에도 6명의 지질전문 인력이 있었을 뿐이었다.

미 군정청의 요청으로 미국지질조사소의 지질기술자 4명이 방한하여 석탄자원과 광물자원을 조사한 것이 이후 1967년에 10권의 보고서로 발간이 되었는데, 이 보고서는 매우 가치있는 자료로 여겨지고 있다.

  1. 수난기 (한국전쟁:1950~1953)

한국전쟁이 일어나는 동안은 지질학의 발전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1. 회복기 (1954~1960)

한국전쟁이 끝나고 정부가 서울로 환도하던 1953년 9월에 학회는 서울대 지질학과 내에 사무실을 두었으며, 1954년에 100만분의 1의 『대한지질도』 개정작업을 통하여 많은 국내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를 계기로 학회의 학술발표 활동도 활발하게 되었다. 지질광물연구소에서도 지질 및 광상조사를 활발히 시행하였으며, 「지질광상조사연구보고」와 「탄전지질조사보고」를 발간하였다.

  1. 발전기 (1960~1980)

1961년 5 · 16 군사정변이 일어난 후 국가의 경제개발을 위한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62~1966)을 추진하는데 절실히 요청되는 지하자원의 개발을 촉진하기 위하여 석탄, 석회석, 철과 같은 주요 지하자원이 풍부히 매장되어 있는 태백산 지역 일대의 지하자원조사 사업이 국립지질조사소에 의하여 계획되어 시행되었다. 이 조사는 우리나라 지질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를 하였으며, 조사결과 작성된 지질도와 보고서를 기초로 하여 태백산지역의 석탄과 광상조사는 물론 이들 광물자원 개발계획이 작성되었으며, 석탄생산과 광산물 수출 증가에 크게 기여하였다.

1964년 8월에 대한지질학회의 공식 학술지인 『지질학회지』 창간호가 발간되었으며, 이를 통하여 회원들의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강연회 및 학술발표회도 점차 활성화 되었다. 우리나라 지질학자들의 국제활동도 점차 활발해지면서 여러 국제기구, 총회, 위원회, 협회 및 국제지질대비계획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학계에서는 1960~1980년의 20년 동안 7개 대학에 지질학과가 새로이 창설되었고, 8개 대학에 지구과학교육과와 4개 대학에 해양학과가 창설되어 국내 지질학 발전을 위한 기초가 마련되었다. 1968년에는 대한광산지질학회(현 대한자원환경지질학회)가 창립되었으며, 공식학술지로 『광산지질』을 발간하였다.

국립연구기관인 국립지질광물연구소는 1976년에 재단법인 자원개발연구소로 개편되어 지질학 관련 업무를 수행하였다. 1973년 10월에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 부설 해양연구소가 설립되어 우리나라 연근해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여 왔다.

  1. 성숙기 (1981~2000)

지질학 분야는 발전기를 통하여 국내 · 국외적으로 학술활동이 점차 활발하여졌으며, 연구인력도 많아져 1980년대에 들어와 연구분야는 보다 세분화되고 연구활동도 다양화되며 전문화되었다. 학술단체로는 지질학 분야에 대표적인 대한지질학회와 대한광산지질학회 이외에 한국고생물학회, 한국광물학회, 한국제4기학회, 대한지질공학회, 한국암석학회, 대한원격탐사학회, 한국석유지질학회, 한국지구과학회, 한국지하수환경학회, 지질학협의회가 창립되어 활발한 연구활동을 하며 각 학회마다 학회지를 간행하게 되었다.

대한지질학회에서는 한국의 지질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종합하는 영문판 『Geology of Korea』를 1987년 8월에 출간하였다. 또한 성숙기에 해당하는 동안 지질학 연구자들의 활발한 국제학술대회 참가 논문발표와 국제학술지에 다수의 연구논문이 게재되었다. 이 밖에도 다양한 국제학술대회가 국내에서 다수 개최되었다.

1980년대 들어오면서 국립대학 내에 부산수산대학교(현 부경대학교)를 위시한 6개 대학교에 지질학과가 창설되었다.

한국자원연구소는 1981년에 종합에너지연구소와 통합하여 한국동력자원연구소로 출범을 하였으나, 1993년에 다시 이 두 기관이 분리하여 한국자원연구소와 한국에너지연구소로 분리되었다. 해양연구소는 1990년에 재단법인으로 재출범을 하였으며, 1988년에는 남극반도 킹조지 섬(King George Island)에 세종과학기지를 건설하여 우리의 연구영역을 남극 지역까지 확대하였다.

  1. 도약기 (2001~)

2000년대까지 성장기를 경험한 지질학 분야는 각 전문분야 별로 활발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지질학 전문가들의 국제학술지 논문발간의 숫자도 매년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1990년 후반부터 광업과 에너지산업 분야의 안정화로 인한 전문인력의 수요축소에 따라 지질과학 분야는 전통적인 지질학 분야의 연구보다는 지구환경 분야로의 발전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새롭게 두드러지게 발전한 분야는 고기후 · 고해양분야, 지하수분야, 지질재해분야, 빙하학, 지구미생물학 분야이다. 최근에는 한반도도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대되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지진에 의한 지진해일로 막대한 지진피해가 있었고, 또한 백두산의 화산활동 징후에 대한 경각심이 인식이 되어 지진과 화산관련 그리고 이에 따른 지질재해에 대한 연구가 향후 활발히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전세계적으로 지하자원의 확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국제적 추세에 따라 지하자원에 관한 지질학 분야의 발전도 이루어질 전망이다.

또한 한국이 2003년부터 국제해양굴착프로그램(Integrated Ocean Drilling Program)에 준회원으로 참가하여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시추선에 승선과학자의 수와 시추시료를 이용한 연구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현재 국내의 연구진이 이러한 국제공동연구 프로그램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어, 이를 통한 지질학 분야의 발전이 예상된다.

연구기관으로는 2001년 1월에 한국자원연구소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으로 개칭되었다. 2002년 4월에는 노르웨이 스피츠베르겐 섬(Spitsbergen Island) 니알슨(Ny-Alesund)에 북극과학기지 다산기지가 설립되었으며, 이제는 남극 · 북극 지역으로 지질과학 분야의 연구영역이 넓혀지게 되었으며, 2004년 4월에는 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가 설립되어 양극 지역의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현황

현재 자연과학대학에서 학과로서 지질과학의 교수와 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곳은 전국적으로 총 15개교가 있으며, 지질학분야의 연구를 담당하는 전문연구기관으로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해양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가 있다. 지질학의 지식을 응용하고 있는 공기업으로는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한국농촌공사, 한국석탄공사, 한국광해관리공단이 있으며, 다수의 에너지 · 자원관련 사기업들이 있어 지질학 전공자들이 활동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지질』(대한지질학회, 1999)
『대한지질학회 50주년사 자료집』(대한지질학회, 1997)
『지질학개론』(정창희, 박영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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