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양(驪陽). 자는 낙이(樂而). 진치중(陳致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진유(陳猷)이고, 아버지는 진사 진복명(陳福命)이며, 어머니는 황진(黃璡)의 딸이다.
1547년(명종 2)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대교·정언·이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1556년 병조정랑, 이듬해 검상(檢詳)·사인(舍人), 1558년 내섬시부정(內贍寺副正), 1559년 전한 등을 지냈다.
1560년 형조참의를 거쳐 의주목사로 출보(出補)되었다가 1563년 공조참의와 동부승지를 역임하였으며, 이듬해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로 명나라에 성절사(聖節使)로 다녀오고, 이어 이조참의가 되었다.
1566년 대사간·호조참의, 다음해 병조참지·부제학을 지내고 치사(致仕)하였다. 일찍이 권신 김안로(金安老)의 횡포에 맞서 그 일당을 탄핵하는 등 기개가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