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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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정측면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정측면
건축
유적
문화재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강현면 진전사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일반형 석조 불탑. 국보.
정의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강현면 진전사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일반형 석조 불탑. 국보.
개설

1966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이 석탑은 둔전리 마을의 서북편에 솟은 관산(冠山) 남쪽 기슭 진전사지의 원위치에 서 있다. 신라식 일반형으로 2층기단을 갖추었으며 상륜부(相輪部)는 노반석(露盤石: 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복발 · 앙화 · 상륜 등을 받치는 장식)까지만 남아 있고 그 이상은 없어졌다.

진전사는 도의선사(道義禪師)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도의선사는 당나라에서 선종을 공부하고 821년(헌덕왕 13) 귀국하여 신라에 선종을 전하였으나 당시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였으며 이 절에서 40년동안 수도하다 입적하였다. 그의 사상은 염거(廉居)화상과 보조(普照)선사 체징(體澄)에게로 전해져 구산선문 중 가지산문(迦智山門)을 열었다.

내용

이 탑의 높이 5.04m이며, 8매의 장대석(長臺石)으로 구성된 지대석(地臺石) 위에 기단부가 형성되었는데, 하층기단은 4매의 장대석으로 결구된 대석 위에 면석(面石)을 놓았다. 동 · 남 · 북면은 1매석씩이나 서면만 2매로 조립되어 5매석으로 짜여진 면석의 각 면에는 양쪽에 우주(隅柱)가 각출되었으며, 중앙의 1탱주(撑柱: 받침기둥)로 양분하여 한 면에 각 2좌(坐)씩의 천인좌상(天人坐像)을 돋을새김하였다.

이들 천인상은 다같이 연화좌 위에 앉아 있는데, 이중의 둥근 두신광(頭身光)을 구비하였고, 천의(天衣)를 날리고 있으며 수인(手印)은 합장을 하거나 혹은 천의를 잡고 있는 등 각각 다른 형태이다. 이 조각들은 각 천인의 상호(相好)가 원만미려(圓滿美麗)하며 유려한 천의자락이 잘 어울려서 당대의 빼어난 작품이라 하겠다.

갑석은 4매석으로 결구되었는데 하면에 너비 1㎝, 깊이 0.7㎝의 낙수홈을 오목새김하여 세밀한 의장을 보이고 있다. 갑석 상면에는 원호(圓弧)와 각형(角形)의 굄을 마련하여 그 위에 상층기단을 받치고 있다.

상층기단 면석은 한 면 2매씩 8매석으로 조립되었는데, 양쪽에 우주가 각출되었고 중앙의 1탱주로 양분하여 팔부신중(八部神衆)을 조각하였다. 이들 팔부중은 모두 운문(雲文) 위에 앉아 있고 무기를 가지고 있다. 각 면의 조각은 부조(浮彫)가 강하여 입체적이며 웅건한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다.

상층기단 갑석은 3매의 판석으로 결구되었는데, 하면에 너비 3.5㎝, 깊이 0.5㎝의 낙수홈이 오목새김되었고 부연(副椽: 탑 기단의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상면에는 원호와 각형의 굄대를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탑신부는 탑신(塔身)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기 1석씩으로 조성되었는데, 각 층의 탑신석에는 양쪽에 우주가 정연하며 초층에는 사방에 사방불(四方佛)이 돋을새김되어 주목된다. 모두 앙련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이중의 둥근 두신광을 구비하였으며 나발(螺髮)에 육계(肉髻)가 큼직한 여래상이다.

동면은 통견법의(通肩法衣)가 양쪽 팔에 걸쳐 무릎을 덮었고 왼쪽 손은 가슴 앞에서 약합을 들고 있는 점으로 보아 약사여래(藥師如來)이며, 서면은 서방극락세계의 아미타불(阿彌陀佛)로서 통견법의가 양쪽 팔에 걸쳐 무릎을 덮었으나 양쪽 발은 노출되었고 수인은 양손을 가슴 앞에 들어 설법인(說法印)을 취하고 있다.

남면 여래상의 법의는 우견편단(右肩偏袒)이며 오른쪽 손은 무릎 위에 놓고 왼쪽 손은 어깨까지 들어 외장(外掌)하여 중지와 무지를 잡았고 약지도 꼬부리고 있다. 북면의 좌상도 우견편단하였으며 수인은 오른쪽 손을 가슴까지 올리고 왼쪽 손은 밑으로 내리고 있다.

각 좌상의 앙련좌는 단엽5판인데 각 판내(瓣內)는 큼직한 자방 주변에 꽃문양이 장식되었다. 원만한 상호와 목에 돌려진 삼도(三道)가 어깨 위까지 길게 늘어진 양쪽 귀와 잘 어울려서 위엄과 자비가 넘치며 그 풍려한 존용(尊容)과 의문(衣文)의 조각수법이 유려하다.

초층탑신 상면 중앙에는 네모난 사리공(舍利孔, 한 변 길이 32.5㎝, 깊이 11.5㎝)이 있다. 옥개석은 각 층 5단씩의 받침이 정연하고 상면은 2단씩의 각형 받침으로써 각기 그 위의 탑신석을 받치고 있다.

낙수면이 평박하고 전각의 반전(反轉)도 경쾌한데 추녀에는 낙수홈이 오목새김되었고 네 귀퉁이의 전각 양면에는 풍경이 달렸던 작은 구멍이 하나씩 보인다. 3층 옥개석 위에는 중앙에 찰주원공(擦柱圓孔, 지름 10㎝, 깊이 10㎝)이 있는데, 그 밑면은 지름 7.5㎝로 약간 좁아졌다.

노반은 2매석으로 구성되었고 중앙에는 지름 11㎝의 찰주원공이 관통되었는데 그 원공의 크기가 고르지 않고 상경(上徑)은 11㎝이나 중경은 9㎝, 하경은 13㎝이다. 이 석탑은 1968년 해체, 보수되었다.

의의와 평가

균형이 잘 잡혀 있는 이 석탑의 단아한 자태와 더불어 하층기단에서부터 차례로 새겨진 비천상, 팔부신중, 사방불 조각은 통일신라 조각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도의선사가 주석했을 당시 진전사의 화려했던 모습을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문화재대관』국보 1(한국문화재보호협회, 대학당, 1986)
『국보』탑파(진홍섭 편, 예경산업사, 1983)
집필자
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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