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으로 지정된 진주평거동고분군은 입지상 석갑산 입구로부터 등산로를 따라 부채꼴로 분포하며 6기의 무덤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덤의 다수는 장방형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호석(護石)을 갖추고 있다. 호석은 지대석, 면석, 갑석 등으로 구성되었다.
1호분과 2호분, 6호분은 평면이 장방형이며 지대석을 깔고 그 위 양쪽으로 우주(隅柱)를 세우고 그 사이에 면석을 넣은 다음 갑석으로 덮은 형태이다. 이들 무덤은 정면 면석 상부에 명문이 음각되어 있다. 3호분과 4호분은 2단의 묘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단은 봉분 및 묘표, 2단은 별다른 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다.
3호분은 정면 갑석 동쪽 모서리를 석탑의 옥개석 형식을 취하며 구름 문양이 음각되어 있고, 묘 앞에 부러진 상태의 묘표에는 "… 공윤종지묘(公允宗之墓)"라고 새겼다. 4호분은 전방으로 2단 축대를 조성해 봉분을 안치하였는데, 봉분은 전방의 세 면을 호석하고 후방은 지표에서 곧장 봉토를 쌓은 형태이다. 그리고 정면 중앙 면석에 "… 대상정공언진지묘(大相丁公彦眞之墓)…"라고 새겼다.
능선 맨 아래쪽에 자리하는 5호분은 장방형 봉토분으로 네 면을 장대석으로 쌓아 호석으로 삼았으며, 호석 상단은 판석을 가장자리 바깥으로 내어 갑석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지대석과 우주는 갖추지 않았으나 호석 사면에는 새김글과 문양이 있다.
진주평거동고분군의 무덤들은 대부분 장방형 모양의 봉분 아래에 사각형으로 갑석을 두르고 있다. 이러한 형태는 거창둔마리벽화고분, 진주하경복묘, 진주상대동고분군 등에서도 보여 비교 연구가 요구된다. 또 돌에 새겨진 주인공의 이름과 연대를 통하여 고려 중 · 후기 가족 공동무덤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축조 연대와 함께 해당 시기의 재지 세력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사적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고려시대 분묘가 군집을 이루고 있는 진주평거동고분군은 다양한 형태의 분묘 양식을 보여 주어 학술적으로도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사적 내에는 비지정의 봉토분이 다수 분포하고 있어 이에 대한 종합적인 조명이 요구되고 있다. 본 유적은 1968년 12월 19일 '진주 평거동 고려고분군'이라는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 7월 28일 '진주평거동고분군'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