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상대동고분군은 고려 충숙왕 대 의정부 찬성사(贊成事)를 역임한 정신중(鄭臣重)의 무덤과 조선 전기 유학자이자 문장가인 정이오(鄭以吾)의 무덤, 그리고 조선 전기 좌의정을 지내고 단종을 위해 순절한 정분(鄭苯) 내외의 무덤 등 진주정씨(晋州鄭氏) 3대의 분묘 5기로 구성되어 있다.
무덤의 형태는 팔각형 무덤 3기, 사각형 무덤 2기이며, 부대 석물로는 석비(石碑) · 석인상(石人像) · 석등(石燈) · 망주석(望柱石) 등이 배치되었다. 무덤은 석축으로 4단의 단 차를 두었으며, 후대에 상석을 시설하였다. 2단과 3단에 있는 사각형 무덤은 각각 조립한 호석(護石)을 두르고 있으며, 2단의 무덤에는 석상 2기와 망주석이 배치되어 있다.
팔각형 무덤은 1단과 4단에 있는데, 앞의 있는 것은 쌍분이다. 이들 팔각형 무덤은 지대석 위에 면석과 갑석이 함께 제작된 호석을 두르고 있으며, 각각의 무덤 앞에 석상과 망부석을 배치하였다. 또 각 단 무덤의 상석과 석상들은 제작 시기에 따라 편차를 보이고 있으며, 후대에 보수를 한 흔적도 확인된다.
무덤의 주인공인 정신중은 의정부 찬성사를 역임하였으며, 정이오의 아버지이다. 정이오는 1374년(공민왕 23) 문과에 급제하고 삼사도사, 공조 · 예조의 정랑, 전교부령(典校副令) 등을 역임하였다. 젊어서는 이색(李穡) · 정몽주(鄭夢周)의 문인과, 훗날에는 성석린(成石璘) · 이행(李行) 등과 교유하였다.
정분은 문음(門蔭)으로 벼슬에 나가 경승부승(敬丞府丞)에 이르렀고, 이조좌랑 · 승문원교리 등을 역임하였으며, 우의정에 올랐던 인물이다.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주도한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단종을 보필하던 황보인(皇甫仁) · 김종서(金宗瑞) 등이 주살되자 고신(告身)을 추탈당한 뒤 낙안(樂安)의 관노가 되었다가, 1454년(단종 2) 적소(謫所)에서 사사(賜死)되었다.
진주상대동고분군의 무덤들은 각 인물이 하세(下世)한 순서에 따라 배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각 묘비(墓碑)에는 피장자의 인적 사항이 새겨져 있다.
진주상대동고분군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에 걸치는 시기 분묘의 형태상 변화를 잘 보여 줄 뿐만 아니라, 피장자가 문헌상에도 등장하는 역사상 주요 인물이라는 점에서도 학술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1997년 1월 30일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