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조약에 의하여 국권이 침해받게 되자 1908년 6월 『대동공보(大東共報)』를 발간, 언론을 통하여 독립투쟁을 폈다. 이보다 앞서 수만 명의 동포가 거주하는 해삼위(海蔘威)에서 독립운동을 펴고자 연해주로 이동, 국민회(國民會) 간부인 유진율(兪鎭律)과 합의하여 동포를 계몽하고 의식을 개발하여 국권회복운동에 결집시키기 위하여 『대동공보』를 발간, 현지 동포와 본국 동포에까지 배포하기에 힘썼다. 편집인은 유진율이었고, 주필은 윤필봉(尹弼鳳)이었다.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