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회의 발상(發祥)과 관련되는 사적지로, 이곳에 있었던 천진암은 지금은 폐사(廢寺)되었다.
18세기 중엽 권철신(權哲身)을 중심으로 한 남인계 소장학자들은 경기도 광주와 여주 등지의 사찰에서 강학(講學)을 가졌는데, 그들이 강학한 장소 중의 하나가 바로 천진암이다.
강학의 내용은 주로 유교경전에 대한 연구를 위주로 하였으나 당시 전래된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도 검토되었다. 이들 중 천진암을 자주 방문하였던 인물로는 이벽(李檗)과 정약용(丁若鏞)이 대표적이다.
정약용의『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는 천진암과 관련된 시문이 여러 편 보인다. 그 때 벌써 퇴락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천진암은 그 뒤 폐허가 되었으나 1962년에 남상철(南相喆)에 의하여 절터가 확인되었고, 이후 1975년부터 변기영 묜시뇰의 주도로 천주교 성지로 개발되었다. 천진암의 성지 개발은 천주교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1779년의 강학이 천진암에서 개최되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즉 권철신이 주관한 1779년의 강학에 대해서는 천진암 개최설과 주어사 개최설이 있는데, 천진암설을 주장하는 입장에서 이곳을 성지로 개발했던 것이다. 1979∼1981년 사이에 이벽 · 정약종(丁若鍾) · 권철신 · 권일신(權日身) · 이승훈(李承薰) 등 한국천주교회 초기 인물들의 묘소가 이곳으로 이장되었고, 현재 신도들의 순례에 필요한 각종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