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창의록 ()

청계창의록
청계창의록
유교
문헌
조선시대 의병장 양대박의 의거에 관련된 기사를 수록한 의병록.
정의
조선시대 의병장 양대박의 의거에 관련된 기사를 수록한 의병록.
편찬/발간 경위

1609년(광해군 1) 양대박의 맏아들 양경우(梁慶遇)가 일부를 편집하였다. 활자본의 간행 시기는 1799년(정조 23) 왕명에 의해 편찬·간행된 『양대사마실기(梁大司馬實記)』(11권 5책, 목판본, 규장각 도서)와 거의 비슷한 때로 추정된다. 필사본에는 남원양씨(南原梁氏)의 시조로부터 양대박의 7세손에 이르는 「청계선생세보(靑溪先生世譜)」가 첨부되어 있다. 권두에는 1609년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온 중국의 웅화(熊化)가 쓴 서문이 있고, 권말의 부록에는 김장생(金長生)·김상헌(金尙憲) 등을 포함한 주변 인물들이 양대박의 업적을 기리는 내용으로 보낸 5편의 서(書)가 덧붙여 있다.

서지적 사항

2책의 필사본과 1책의 목활자본이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내용

「창의격문(倡義檄文)」·「상송강정상국청주참왜사서(上松江鄭相國請奏斬倭使書)」·「창의종군일기(倡義從軍日記)」·「운암파왜도후기(雲巖破倭圖後記)」·「천병유량격문(天兵留糧檄文)」·「의상소초(擬上疏草)」·「차고상사유량시운(次高上舍儒良詩韻)」·「양공전(梁公傳)」·「제정상국양공전후(題鄭相國梁公傳後)」·「호남유생상소(湖南儒生上疏)」·「남원양씨세전가승(南原梁氏世傳家乘)」 및 양대박에 대한 제문 2편을 비롯해 『용성지(龍城誌)』의 초문(抄文), 유고 『청계집(靑溪集)』의 서문, 「제창의격초본발(題倡義檄草本跋)」 등이 수록되어 있다.

상·중·하 세 편으로 구성된 「창의종군일기」는 1592년(선조 25) 4월 17일부터 7월 10일에 이르는 임진왜란 초기에 양대박이 아들 양경우·양형우(梁亨遇) 등과 함께 전라북도 임실의 운암(雲巖)에서 왜적을 대파하고, 이어 전주에 이르렀을 때 과로로 인해 진중에서 숨을 거둔 행적 등을 기술한 것이다.

「운암파왜도후기」는 1599년 둘째 아들 양형우가 아버지가 운암에서 고경명(高敬命)과 함께 적을 토벌하는 모습을 회상하면서 그린 그림에 대한 해석이다. 「호남유생상소」는 1610년 김화(金澕)를 주축으로 한 호남 유생들이 양대박의 의병 활동에 대한 공적을 들어 증직(贈職) 및 사우(祠宇) 건립 등을 조정에 건의하는 내용의 소다.

『용성지』의 초문에는 이들 삼부자의 전공이 사실적으로 실려 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해 정철(鄭澈)에게 일본 사신을 죽여 없애기를 임금에게 요청하도록 부탁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 중에 우리나라를 구원하러 파견된 명군(明軍)에 협조를 당부하는 내용으로 주민들을 회유한 격문 등은 『청계집』·『양대사마실기』, 양경우의 『제호집(霽湖集)』, 양형우의 『동애집(東崖集)』 등과 함께 전란사 연구에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청계집(靑溪集)』
『양대사마실기(梁大司馬實記)』
『제봉집(霽峰集)』
『송강집(松江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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