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3월 17일에 경상북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진보면 추현리는 하고산 · 상고산 · 가래두들 · 추현마을에 각각 10여 호씩 모여 사는 농촌으로 평산신씨 집성촌이며, 부근에 합강(合江)이 흘러 수리(水利)가 좋은 농경지를 가지고 있다.
선소리꾼인 신상경(申相京)은 1926년에 충북 단양에서 출생하였으나 2∼7세엔 예천군 상리면에서 성장하였으며, 7세에 부친을 따라 만주로 갔다. 22세에 귀국하여 예천군 용문면 금당실(金塘室)에서 1년반, 상리면 고항리에서 7년, 지보면에서 2년간 거주하였다.
후에 강원도 원주로 가서 4년간 농사지으며 살다가 부친의 고향인 진보면으로 이주했다. 진보면 부곡리에서 1990년경에 추현리로 이사왔다. 그는 예천군에 거주할 때 상두소리를 익혔으며, 47세 때에 가래두들 장례에 초청되어 처음으로 상두소리를 불렀다 한다.
추현리를 비롯하여 청송군의 일반 행상(行喪)소리는 너화넘차류와 가파른 데 오를 때의 어허쉬야류이고, 일반 회다지는 소리는 덜구류이다. 청송추현상두소리의 받음구는 각각 ① 너허호 너허호, 너화넘차 너호, ② 어허 쉬야, ③ ‘오호 덜구야’이다. ①은 3분박 4박 2마디씩이며 ②는 3분박 4박 1마디, ③은 8분의 6박 1마디씩이다.
추현 상두소리의 선율은 도(레) · 미 · 솔 · 라의 도선법에 속하며, ①∼③은 모두 미음에서 종지한다. 회다질 때는 광안에 8인이 달굿대 없이 들어가 소리를 받는다. 너화넘차류를 청송군에서는 논맴소리로도 원용한다.
신상경의 창에서, ①의 메김선율 2마디 중 제2마디는, 받음구의 후반부인 “너화넘차 너호”를 고정구(固定句)로 부른다. 또한 덜구소리의 마무리는 “에히용아”를 8분의 6박 1마디로 2, 3회 주고받는 것으로 맺는다.
경북의 지정 조사 자료를 보면 대도듬소리라 하여 “에이여”소리가 게재되어 있는바, 이는 “에히용아”와 함께 예천군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신상경은 백세를 못 살고 떠난 고인에 대한 아쉬운 정과 가족과의 사별, 죽음은 어느 누구도 못 면한다는 것, 묘를 명당터에다 잡았으니 자손들이 복을 많이 받을 것이라는 내용, 상주들 · 딸과 사위 · 친손자 · 외손자를 불러 들이면서 노자돈을 소재로 재미있게 그 메김구를 엮어 간다. 1997년에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