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앞면 3칸, 옆면 1칸의 단층 문으로,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청평사는 조선 명종 때 보우(普雨, 1509∼1565)가 다시 건립한 절인데, 경내에는 국보로 지정되었던 극락전(極樂殿)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6 · 25전쟁 때 불타 버렸다.
문은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해 있다. 가운데 1칸은 통로로 사용되고 있는데, 제법 넓은 편이다. 그 좌우의 협간(夾間)은 가운데칸에 비해서 매우 좁지만, 3면을 모두 벽으로 마감하여 안에 천왕(天王)이나 신상(神將) 등의 입상(立像)을 모실 수 있도록 하였다. 현재 문의 좌우에는 익랑이 길게 연결되어 있다.
건물의 가구(架構)는 기둥 위에만 공포(栱包)를 놓은 주심포(柱心包)식인데, 문이라는 성격에 알맞게 간소하게 꾸며져 있다. 곧 공포는 출목(出目)이 없이 기둥에 놓은 대접받침인 주두(柱枓) 위에 초새김한 첨차(檐遮)인 두공(頭工)을 올려 직접 주심도리(柱心道里)를 받치고 있다. 다만 첨차와 쇠서[牛舌]의 모양은 주심포계 건물의 전형적인 초기 양식을 잃고 있어서, 16세기 중반에 주심포계 건물의 양식 변천이 이미 진행되었음을 알려 준다.
천장의 가구는 대들보와 함께 마루도리를 받치는 짧은 기둥인 마룻대공(臺工)만을 둔 간단한 조립이며, 처마에는 끝부분에 덧얹는 짤막한 서까래인 부연(浮椽)도 두지 않았다. 건물 안쪽에는 가운데칸 좌우에 기둥을 하나씩 세워서 대들보를 받치도록 한 다음, 그 위에 홍살문[紅箭門]처럼 살대를 가로로 배열하여 특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