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염재(恬齋). 조선 후기에 활동한 도화서 화원으로, 다수의 궁중 행사에 동원되어 도화(圖畫) 업무를 담당하였다. 1776년 영조의 국장도감[英祖國葬都監], 1776년 장헌세자를 위한 상시봉원도감[(莊獻世子上諡封園都監], 1777년 효장세자와 빈을 진종과 효순왕후로 추숭하기 위한 추숭도감[眞宗追崇都監], 1778년 장헌세자(莊獻世子)의 빈인 혜빈(惠嬪)의 존호도감[惠嬪進號都監], 1789년 장헌세자의 영우원 천봉도감[莊獻世子永祐園遷奉都監] 등에서 일한 사실이 각 의궤에 기록되어 있다.
또 1795년 정조가 생모인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를 모시고 화성 행궁에 행차하여 연 회갑 잔치를 그린 ‘진찬도병풍’ 제작에 참여한 사실이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기록되어 있다. 이 병풍은 『화성행행도팔첩병(華城行幸圖八疊屛)』 혹은 『화성능행도병(華城陵行圖屛)』이라는 제목으로 현존하는데, 최득현 외에 김득신(金得臣, 1754∼1822), 이명규(李命奎), 장한종(張漢宗, 1768∼1815 이후), 윤석근(尹碩根), 허식(許寔, 1762∼?), 이인문(李寅文, 1745∼1824 이후) 등이 공동으로 제작한 것이다. 여덟 폭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다양한 구도와 뛰어난 필치, 세련된 채색, 사실적이고 현장감 넘치는 행사 장면 표현이 돋보여 궁중 행사도 중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으로, 제작에 참여한 화원들의 우수한 기량을 말해 준다.
최득현은 1788~1796년 규장각 차비대령화원으로 봉직하였으며, 녹취재에 응하여 성적이 우수한 자에게 주는 사정(司正)에 부록(付祿)되기도 하였다. 1796년에 해주 황해도 감영에 화사 군관으로 파견되어 근무하였다. 궁중 기록화 외에 산수와 화훼를 잘 그렸다고 전하며, 「영월진경산수사생도(寧越眞景山水寫生圖)」(개인 소장)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