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예경(禮卿). 호는 죽하(竹下). 최경(崔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헌중(崔獻重)이고, 아버지는 증좌찬성 최종문(崔鍾問)이며, 어머니는 이재정(李載廷)의 딸이다.
1837년(헌종 3) 진사시에 합격하여 음사(蔭仕)로 참봉을 거쳐 대흥군수 겸 홍주진관병마첨절제사(大興郡守兼洪州鎭管兵馬僉節制使)를 지냈다.
1850년(철종 1) 증광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의 응교를 역임하고, 이듬해 함경도암행어사로 나가 제세안민의 선정을 베풀었으므로 산릉도청(山陵都廳)에 선정비가 세워졌다.
1852년 사은사(謝恩使) 서장관(書狀官)으로 연경(燕京)에 다녀와서 국·한문 혼용의 「연행별곡(燕行別曲)」을 남겼다. 1857년 김해도호부사로 외직에 나가 임기를 마치고, 1859년에 승정원우부승지를 지냈으며,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고 양주목사를 역임하였다.
그 뒤 사헌부대사헌·한성부판윤을 거쳐 1866년(고종 3) 이후로 이조·형조·공조·예조 판서를 차례로 역임하고, 1875년 숭록대부(崇祿大夫)에 가자되어 판의금부사로 영풍군(寧豊君)에 봉해졌다. 훈당(勳堂)을 거쳐 기로사(耆老社)에 들어갔다.
성균관대사성으로 재임할 때에는 유생교육에 힘썼고, 홍문관·예문관 제학이 되어서는 모든 문한을 제찬하고 경서를 진강하였다. 특히, 시문에 능하였으며, 저서는 『죽하집』 8권 4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