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대용(大容). 호는 묵수당(默守堂). 최충(崔冲)의 후손이며, 훈련원도정 최경(崔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수 최여우(崔汝雨)이고, 아버지는 최전(崔澱)이며, 어머니는 신홍점(申鴻漸)의 딸이다. 김현성(金玄成)·조수륜(趙守倫)·최립(崔岦)·정구(鄭逑) 등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다.
1613년(광해군 5) 생원이 되었으며, 그 해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홍문관응교를 거쳐서 훈련도감낭청이 되었으며, 1617년에는 평안도평사(平安道評事)가 되었으나 대북파(大北派)에 의하여 삭직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재등용되었으며, 이듬해 안변부사(安邊府使)가 되어 함경도관향사(咸鏡道管餉使)를 겸하였다. 이 때 철산군 백량면(柏梁面)의 가도(椵島)에 주둔하고 있는 모문룡(毛文龍) 휘하의 명나라 군대에게 군량을 공급하였다.
그 뒤 군부시정(軍簿寺正)·양주목사(楊州牧使)를 지냈고, 1629년 부수찬(副修撰)이 되었다. 이어서 홍문관교리를 거쳐 정주목사(定州牧使)·길주목사(吉州牧使)를 역임하고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었다.
의약과 복서(卜筮)·천문에도 밝았으며, 여러 곳의 지방관으로 재직 중 선정을 베풀어서 곳곳에 송덕비(頌德碑)가 세워졌다. 저서로는 『묵수당집(默守堂文集)』·『서명천견록(西銘淺見錄)』·『길주사적기(吉州史蹟記)』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