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견숙(見叔). 호는 송정(松亭). 최자경(崔自涇)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수지(崔水智)이고, 아버지는 최이한(崔以漢)이며, 어머니는 문이신(文以信)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났고, 학문에 힘써 문장에 능하였다. 박영(朴英)·이황(李滉)에게 글을 배웠으며, 박운(朴雲)·김취문(金就文) 등과 더불어 교분이 두터웠다.
1546년(명종 1) 증광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사관(史官)이 되었고, 지평·의주목사·병조참지·공조참의·우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이 후 충청도관찰사·나주목사·함경북도병마절도사를 거쳐, 1577년(선조 10) 전라도관찰사로서 뇌물을 강요한 죄로 한때 삭탈관직이 되었다가 형조참판에까지 이르렀다. 도량이 크고 정사(政事)를 처리하는 데 여유가 있었다고 하며 여러 번 큰 고을을 맡아 다스렸고 세 번이나 방백(方伯)이 되어 치적을 남겼다.
또 관직에 있으면서도 학문을 잊지 않았으며 스스로 끊임없이 면학에 소홀할까 책하였다 한다. 재주와 뜻이 매우 굳고 강직하여 이황도 그를 매우 가상히 여겼으며, 당시 사람들도 장상의 재주가 있다고 칭찬하였다. 선산의 송산서원(松山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