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복초(復初), 호는 송천(松泉). 영의정 최항(崔恒)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영호(崔永灝)이고, 아버지는 전첨(典籤) 최수진(崔秀珍)이며, 어머니는 이세신(李世臣)의 딸이다.
1555년(명종 10) 소과를 거쳐 1568년(선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장령·정언·집의·사간을 역임하였으며, 이어 동래와 부평의 부사를 지냈다. 1578년 부평부사로 재임중 효릉(孝陵)의 감역(監役)이 문제되어 파직되었다가 다시 승지로 기용되고, 1588년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
이후 지중추부사를 거쳐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유성룡(柳成龍)의 파직에 따라 영의정에 기용되었다. 이듬해 병으로 사직,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영평부원군(寧平府院君)에 봉해졌다.
임진왜란 당시 왕을 의주까지 호종했던 공으로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추록(追錄)되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