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피케이악극단은 1945년부터 한국전쟁 전까지 주1, 주2, 주3, 쇼와 같은 시도를 했다. 케이피케이악극단의 시작은 이난영, 장세정과 같은 가수 중심이었으나 극적인 요소들을 결합하면서 변화가 생긴다. 1946년 10월 초등학교 학력의 성악, 현대 무용, 탭 댄스 가능한 이들을 음악무용연구소에서 모집할 정도로 규모를 키웠다. 악극단은 음악 시, 음악 희극, 그랜드 쇼, 로칼 쇼, 오페레타 등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초기 악극단의 공연은 김해송의 음악 위주의 버라이어티 주4 중심이었다가 윤부길과 합작하여 공연의 연기 부분이 보완되었다. 윤부길이 탈퇴한 이후 국외 고전 희곡, 오페라, 영화 등을 통해 소재를 발굴하고자 했다. 김해송은 음악 외에도 연출, 장치와 조화를 이루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악극단 음악은 전통 음악과 재즈를 자연스럽게 스윙 재즈로 연결한 김해송의 곡으로, 미군 부대와 다양한 무대에서 각광받았다.
주요 출연진은 김해송, 장세정, 윤부길, 이난영, 박향림, 신카나리아, 최병호, 현경섭, 이병우, 이봉룡 등이었다. 1950년 6월 <자매와 수병>을 마지막으로 김해송이 납북되면서 부인 이난영이 악단을 잠시 운영하였지만, 실패를 거듭하고 해체되었다.
주요 공연 작품은 <물레방아>, <푸른 광상곡>, <이사랑전>, <아라리아의 노래>, <순정의 곡>, <육찬십용사>, <도란도도>, <칼멘 환상곡>, <김삿갓>, <자매와 수병>, <풍차 도는 고향>, <남남북녀>, <한 많은 유심사(唯心寺)>, <남편의 고통>, <로미오와 줄리엣>등이다.
작곡가 김해송의 역량으로 인해 트로트, 민요, 재스 등의 여러 장르 문법을 아우르거나 교차하는 음악을 활용할 수 있었고, 조선악극단보다 발전한 공연 형식을 보이게 되었다. 미국 초기 뮤지컬 무대를 선보인 악단이란 평가와 1960년대 버라이어티 쇼를 양산하는 기반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