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사 ()

박인로의 노계집 중 태평사
박인로의 노계집 중 태평사
고전시가
작품
1598년(선조 31) 박인로(朴仁老)가 지은 가사.
정의
1598년(선조 31) 박인로(朴仁老)가 지은 가사.
개설

박인로가 38세 때에 지은 작품으로 작자의 문집인 『노계집(蘆溪集)』에 실려 있다. 작자가 경상도좌병사 성윤문(成允文)의 지휘 아래 왜적을 막고 있을 때 부산에 있던 적이 밤에 달아나자, 성윤문이 10여일 그곳에 머무른 뒤에 본영으로 돌아와 수군(水軍)을 위로하기 위하여 박인로로 하여금 이 가사를 짓게 한 것이다.

내용 및 형식

형식은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모두 72행이며, 가사의 율격을 충실히 지켰다. 그러나, 2음보를 추가하여 6음보로 늘어난 행이 두 군데, 1음보가 결손되어 3음보로 축약된 행이 한 군데 보인다. 3인칭 서술시점에 의하여 객관적 서사(敍事)로 진술되다가 작품의 끝부분에 이르러서 “자유생령(子遺生靈)들아 성은(聖恩)인줄 아나산다”라고 하여, 전쟁에서 살아남은 백성들을 청자(聽者)로 설정하여 교시적 설득을 하였다.

이어서 “천운순환(天運循環)을 아옵게다 하나님아/우아방국(佑我邦國)하샤 만세무강(萬歲無彊) 눌리소셔/당우천지(唐虞天地)예 삼대일월(三代日月) 비최소셔/오만사년(於萬斯年)에 병혁(兵革)을 그치소셔/경전착정(耕田鑿井)에 격양가(擊壤歌)를 불니소셔.”라고 하여 하느님(天)을 청자로 설정해서 작자가 소망하는 이상세계가 실현되기를 강렬하게 염원하였다.

내용상의 짜임은 기(起) · 승(承) · 전(轉) · 결(結)의 구조를 취하였는데, 이 4단락의 요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① 뜻밖에 왜적의 침입으로 피해가 컸지만 명군(明軍)의 도움으로 그들을 내쫓음(처음∼몃몃ᄒᆡ를 디내연고), ② 정유재란을 당하여 힘을 다하여 싸우는 아군의 모습과 전란의 끝마침(∼太平오ᄂᆞᆯ 보완디고), ③ 전란이 끝난 뒤의 명랑 · 쾌활하게 노는 모습(∼이 ᄀᆞᆺᄒᆞ니 ᄯᅩ 인ᄂᆞᆫ가), ④ 평화를 맞아 모두 충효 일념으로 주1을 밝히고 태평세월을 기원하며 살자(∼끝)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작품의 이념적 기반은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이 넘치는 충효사상이며 평화와 태평성대가 계속되기를 염원하는 충정이 깔려 있다. 표현 기교가 다소 능숙하지 못하며 한문어투와 고사성어가 많은 것이 흠이지만, 그 문체가 강건 · 웅렬 · 화려하고 무인다운 기상이 넘쳐 흐르는 작품이다. 또, 전체의 구성이 웅장한 가운데 섬세함이 숨어 있고, 조어(造語)가 치밀하고 사용된 어휘가 풍부하다. 이 작품은 작자의 초기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시가문학사상 3대시가인으로 꼽힐만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참고문헌

『송강·노계·고산의 시가문학』(박성의, 현암사, 1966)
『박노계연구』(이상보, 일지사, 1962)
주석
주1

유학에서, 사람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을 이른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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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최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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