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황남동 토기는 높이 34㎝, 입지름 23㎝, 노서동 토기는 높이 40.1㎝. 황남동 토기는 미추왕릉지구(味鄒王陵地區) 계림로 제16지구 제30호에서, 노서동 토기는 노서동 제11호분에서 출토되었다.
신라의 토기 중에는 고배의 뚜껑이나 항아리의 어깨 등에 장식으로 붙인 작은 토우들이 있다. 이들은 인물과 동물이 주이며 10㎝를 넘지 않는 것들로서, 간단한 손놀림이나 얼굴 표현으로 인간의 감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대부분 황남동 고분군에서 출토되었다.
황남동 출토 토기는 목 부분에 5개씩의 선각문(線刻文)과 원형문 속에 점문(點文)이 있는 무늬를 2단으로 넣었고 몸체[胴體]에도 같은 무늬 조합을 역시 2단으로 장식한 다음 그 위에 토우를 빚어서 붙인 것이다.
이 목이 긴 항아리[長頸壺]의 어깨와 목[頸部] 부위에는 5㎝ 정도의 작은 토우들이 붙어 있다. 항아리 목과 어깨에 걸쳐 임신한 여인이 가야금을 뜯고 있는 모습, 개구리를 물고 있는 뱀이 가야금 아래를 지나고 있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이외에도 항아리의 어깨 부분에는 성행위를 하고 있는 남녀, 활짝 날개를 벌린 새, 개구리를 물고 있는 뱀, 새, 자라 등이 붙어 있고, 목 부분에는 새와 물고기, 뱀이 개구리를 쫓는 듯한 뱀의 모습, 머리가 결실된 남자상 등이 붙어 있다.
한편 노서동 제11호분 출토 토기는 목 부분에 2단으로 5줄의 물결무늬를 교대로 엇갈리게 하고, 그 바깥으로 원문을 그렸다. 몸체 가운데 역시 1단의 물결무늬를 교대로 엇갈리게 새긴 다음, 목 부분에 토우를 붙여 놓았다.지팡이 같은 막대기를 쥐고 있는 남자는 오른손으로 과장되게 표현된 성기를 쥐고 서 있으며, 유난히 큰 코와 찢어진 두 눈, 그리고 솟은 머리 등이 인상적이다. 그 밖에 개구리를 물고 있는 뱀이 길게 붙어 있고, 두 팔을 벌리고 한 손에는 막대기를 든 남자상, 그 옆으로 다시 개구리를 물고 있는 뱀 등이 붙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