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국립경주박물관이 발굴조사하였다. 낙동강의 한 지류인 동창천(東倉川)의 하안충적지에 솟아 있는 해발 61m의 나즈막한 야산 정상부에 있다.
유물은 발굴 전구역에서 고루 출토되었는 바, 특히 홈자귀[有溝石斧]·반달돌칼[半月形石刀]·돌낫[石鎌]·대팻날 등 8점의 석기가 한 곳에 겹쳐진 것이 발견되기도 하였으나, 층위의 두께가 얇고 교란이 심하여 뚜렷한 유구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 밖에 통일신라시대 뼈단지[骨壺] 2점도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의 종류는 다양하다. 돌낫·돌칼[石劍]·돌화살촉[石鏃]·홈자귀·돌도끼[蛤刃石斧]·반달칼·대팻날 ·숫돌[砥石] 등의 석기류, 덧띠토기[粘土帶土器]·두형토기(頭形土器)·쇠뿔잡이토기 등의 토기류, 그리고 그물추·가락바퀴·장식옥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장식옥은 일본 조몬시대[繩文時代] 전기에 유행하던 결상이식(玦狀耳飾)과 그 형태가 유사하여 주목되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출토된 것이다. 다만, 양자 사이에 시기적인 차이가 문제가 되고 있다.
그물추·가락바퀴 그리고 반달칼 등의 농어구의 존재는 어로와 농업이 이 시기 사람들의 생업에 큰 부분을 차지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유적의 성격은 보령 교성리유적, 대구 연암산 유적 등과 비슷한 점을 보이고 있어, 야외작업장 또는 어업·수렵·농업의 풍요를 기원하기 위한 제사유적으로 추정된다.
연대는 출토토기류로 보아 보령 교성리 유적과 비슷한 시기인 서기전 3세기경으로 생각된다. 출토유물은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