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명칭은 파나마공화국(Republic of Panama)이며, 해안선의 길이는 2490㎞이다.
면적 7만 5420㎢, 인구는 365만 7024명(2015년 현재), 수도는 파나마 시티(Panama City)이다.
종족구성은 메스티조 70%, 백인 10%, 인디언 10% 등이다. 언어는 스페인어가 공용어이며, 종교는 기독교를 주로 믿고 있다.
석유제품·원당·바나나·새우 등이 많이 산출되어 수출하고 있으며, 구 스페인 식민지문화와 미국문화가 공존한다. 파나마 운하와 콜론(Colon) 자유무역지대를 중심으로 중계무역과 국제금융이 발달하였으나, 파나마 운하 주변의 국제도시화로 여러 사회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2015년 현재 국민총생산량은 447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1824 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임기 5년의 대통령 중심제 공화제이며, 의회는 임기 5년의 단원제(78석)이다. 주요 정당은 정당 민주혁명당(PRD), 시민당(PP), 자유공화당(MOLIRENA), 민족자유당(PLN), 연대당(PS)이다.
1501년 콜럼버스(Columbus, C.)가 발견한 후 스페인·콜롬비아의 통치를 거쳐 1903년 11월 3일 콜롬비아로부터 독립하였다. 1968년 쿠데타로 1983년까지 군부의 영향 하에 있으면서 1972년 10월 헌법을 제정하였고, 1984년 5월 직접선거에 의해 민선정부가 수립되었다.
1987년 6월 군부실력자 노리에가(Noriega)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폭동 이후 미국은 노리에가를 마약밀매혐의로 기소하는 한편, 경제·군사원조를 중단하였다.
1989년 5월 총선에서 친미파인 반 노리에가 세력의 엔다라(Endara) 후보가 압승을 거두자 노리에가는 선거무효조치를 발표하였으나, 국내외 반발이 심해지자 1989년 12월 미국에 일방적으로 선전포고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파나마에 진입하여 파나마사태는 진정되고, 새로 엔다라 정권이 출범하였다. 1994년 8월에는 바야다레스(Balladares) 대통령이 집권하였다.
1997년 이후, 콜론 자유무역지대의 경기회복과 함께 파나마는 중남미 무역의 중심지로서 주목받았으며, 2000년 미국으로부터 파나마 운하를 반환받아 운하 주변에 관광도시 및 공업단지 등 개발을 추진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중도중립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1945년 유엔에, 1975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다.
파나마는 1948년 12월 12일 한국을 승인하였으며, 양국은 1962년 9월 30일 국교를 수립하였다. 1973년 5월 5일에는 파나마 상주대사관이 개설되어, 2015년 현재도 개설되어 있다. 파나마는 1979년 3월 1일 주한 상주대사관을 개설하였다.
양국은 1974년 6월 문화 협정, 1979년 12월 항공 협정, 2001년 7월 사증면제 협정2002년 6월 경제협력 협정 등을 체결하였다.
우리나라는 주로 농림수산 분야의 연수생을 초청하여 교육시키고, 차량 등의 무상원조로써 경제협력을 하였으며, 파나마 콜론자유무역지대에는 많은 민간업체가 진출하였다.
우리나라의 대 파나마 수출액은 2015년 현재 27억 6000만 달러로 주종목은 선박, 승용차, 철강, 건설중장비, 타이어 등이고, 수입액은 5억 달러로 주종목은 선박, LPG, 고철, 동제품, 중유, 알루미늄제품 등이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9명의 파나마 선수단이 참가하였다. 2015년 현재 KOTRA를 비롯하여 대우, 삼성, 외환은행 등의 30여 개의 업체가 진출해 있으며, 380여 명의 한국 교민이 있다.
한편, 북한은 외교관계를 체결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