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거산성(八莒山城)의 내부에서 집수지 2기가 조사되었다. 1호는 돌로 된 평면에 타원형 형태이며, 2호는 목조로 된 평면 직사각형 형태이다. 2호가 먼저 만들어졌다. 목조 집수지는 기둥목, 횡판목, 지대목을 사용하여 만들었으며, 길이 8.5m, 너비 4.9m, 깊이 33.6m, 바닥 면적은 41.8㎡이다. 이 집수지는 문경 고모산성의 저장 시설인 목곽고(木槨庫)와 유사한 형태이다. 집수지 내부에서는 장경호, 대호, 단경호, 옹, 발, 고배편 등의 토기류와 목기, 목간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16점의 목간 중 10점의 표면에 먹물로 쓴 묵서가 남아 있는데, 이 묵서는 길이 2033cm, 너비 2cm 내외, 두께 1~1.5cm의 가늘고 긴 꼬리표 모양을 하고 있다. 이 묵서가 제작된 시기는 임술년(602), 병인년(606)으로 추정된다. 이 목서에 간지, 지명, 곡식 등이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팔거산성은 주로 세금 징수와 관련된 시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팔거산성에서는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의 석축, 집수지, 성벽 등이 확인되었다. 6세기 중엽에서 9세기 경에 사용된 토기와 평기와 조각이 출토되었는데,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이 가장 많다. 다량의 목간이 출토된 함안 성산산성이 교통의 요지에 자리한 것과 같이 팔거산성 또한 신라 팔리현(팔거리현)의 중심지에 있다. 팔리현은 대구에서 선산으로 향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팔거산성이 교통의 요지에 있다는 점에서 추후 팔거산성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면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유구와 유물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팔거산성은 가장자리는 험준하지만 정상은 평탄한 해발 287.7m 함지산 정상부에 건설된 '산정식(山頂式) 산성'이다. 산성의 북서쪽에는 팔거천 유역의 넓은 충적평야(沖積平野)가 펼쳐져 있다. 산성은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둘레 1,136m, 높이 5~10m이고 내부 면적은 55,101㎡이다. 산성 내 시설은 문지 2개소, 치 7개소, 수구문지 1개소, 우물 2기, 건물지 1기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팔거산성의 본성은 가로줄눈에 맞춰 직사각형의 돌을 바른층쌓기 기법으로 수직에 가깝게 쌓아올렸다. 성 외벽의 기초는 자른 돌로 들여쌓기를 하여 전체적으로 계단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돌을 쌓은 상태로 보아 본성 외벽을 쌓기 전에 외벽 하단부를 먼저 쌓은 것으로 보인다.
팔거산성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미 반은 무너졌다고 적혀 있으며, 『여지도서』의 「고적조」에도 그 기록이 남아 있다. 이 기록은 팔거산성이 통일신라시대에 주로 사용되다가 조선 전기에 이르면 퇴락해 거의 사용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인해 성을 고쳐서 일시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팔거산성의 목조 집수지에서 출토된 목간 묵서에서 지명, 간지, 곡식명이 판독되었다. 이를 통해 교통의 요지에 들어섰던 팔거산성은 세금 징수와 관련된 시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