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조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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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유적
중국 길림성 집안시(集安市)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성곽. 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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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중국 길림성 집안시(集安市)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성곽. 산성.
내용

서남으로 혼강(渾江)과 30㎞ 거리에 환인현(桓仁縣)의 오녀산성(五女山城)이 멀리 바라보인다. 패왕조촌에서 뻗은 계곡이 동북으로 향하여 양쪽 산맥은 기복을 이루면서 점차 높아져 2.5㎞ 지점에서 절벽처럼 험해지면서 양쪽이 합쳐져 해발 764m를 이룬다.

패왕조산성은 이 산봉우리 사이에 축조되었으며 일부 경사진 언덕에만 쌓여 있다. 성의 주변은 많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으나 산세는 비교적 낮은 편이고, 성의 동서면과 북벽의 서부는 험준한 절벽을 이룬다.

성안에는 내〔川〕가 하나 있는데 좁은 물줄기가 남류하여 계곡의 원천을 이룬다. 또, 북에서 흘러내린 혼강은 성의 서편을 지나 패왕조촌 앞에서 돌아 서북의 신개하(新開河)로 흘러든다. 성은 산세의 지형조건을 최대로 이용하여 축조되었다. 기복을 이루는 지점과 남면의 협곡에는 돌로 성벽을 쌓았으며 지세가 낮은 곳은 높게 쌓았다. 그 중 서벽남단과 북벽동단은 비교적 높게 쌓았다.

성의 규모는 동벽 298m, 서벽 420m, 남벽 247m, 북벽 295m로 전체 성벽의 길이는 1,260m에 이른다. 성벽에 사용된 돌은 화강암계통으로 길이 20∼51㎝, 높이 13∼26㎝, 너비 29∼42m 크기의 약간 가공한 장방형이다. 성벽의 규모는 곳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가장 높은 곳이 21층으로 쌓은 5.2m, 너비가 1∼4m 정도이다.

서·북·동 3벽에는 몇 단을 쌓은 여장(女墻)이 있는데 여장의 규모는 대개 높이 0.5m, 너비 1m 전후이다. 여장에 사용된 석재는 가공하였으며 축조할 때 내외면을 비교적 정연하게 쌓고 내부의 공간은 잡석으로 채웠다. 성의 네 모퉁이에는 성밖으로 치(稚)를 설치한 흔적이 보인다. 동남치는 5.5×6m, 서남치는 길이는 알 수 없으나 너비는 7.5m이다. 치의 위에는 본래 각루(角樓)가 있었을 것 같다.

성문은 남북 두 곳에 있었는데 북문은 북벽의 중앙에서 동쪽으로 약간 편재하고 문도(門道)의 양측이 무너져내려 채워져 있으나, 성벽의 내측과 문도의 양벽이 굽어지는 성벽의 기단부는 원각(圓角)이며 너비는 3m이다. 북문 외면의 약 8m 지점에 1단으로 된 성벽의 기초부가 있는데, 동단은 북장(北墻)과 연결되어 이 구조가 본래 반원형 옹성임을 가능하게 하고, 성안에서 밖으로 나가려면 자연 좌측으로 나가게 되어 있다. 또, 남문은 남벽의 중앙에서 서측으로 편재하여 있으나 무너져내려 있으며 절단된 너비는 9m 정도이다.

북벽의 동단에는 기둥구멍 18개가 여장 밑에서 확인되었는데 동서로 일직선으로 설치되었다. 간격은 1.45∼1.5m이며 동단의 3개의 구멍 간격은 1.9∼2m 간격이다. 기둥구멍은 한 변이 27∼30㎝, 깊이 50㎝의 방형이며 같은 기둥구멍이 동벽의 남단에도 1개가 확인되었다. 이들 구멍은 노(弩)를 고정하던 기둥구멍으로 추정된다.

성안에서는 도형철편(桃形鐵片)·철대구(鐵帶鉤)·철정(鐵鋌)·동촉(銅鏃)·돌절구〔石臼〕·그릇편〔陶片〕 등도 출토되었다. 이 성은 출토유물로 보아 고구려의 중요한 산성으로 보이며 성벽의 구조물인 성문·기둥구멍들의 형태가 산성자산성(山城子山城)과 흡사하다. 이 성의 전략상 중요성은 혼강의 동쪽에 위치하여 신개하의 계곡을 방어하던 중요한 성곽으로, 부이강(富爾江)을 따라 혼강을 건너 신개하를 거슬러 올라가 동남의 고구려 수도인 국내성으로 통하였다. 서기 3년 유리왕이 국내로 천도할 때 방어를 위해 먼저 위나암성(尉那巖城)을 쌓았는데, 이 성을 위나암성에 비정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吉林集安高句麗覇王朝山城」(方起東, 『考古』 1962年 11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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