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 확실하지 않아 이름을 알지 못하므로 있던 지방 이름으로 불러 풍국이라 하였다. 일찍이 일본에 건너갔으나 그 때는 일본에 불교가 널리 유포되지 못하였으므로 풍후국(豊後國)의 민가에 숨어 있었다.
587년 4월 임금이 병들어 불교에 귀의하려 하였으나, 신하들이 본국의 신(神)을 등지고 이국의 부처를 섬기려 한다는 이유로 반대하였다. 이에 소아마자(蔬我馬子)가 설득하고 임금의 아우 혈수부왕자(穴穗部王子)가 풍후국의 풍국법사의 명성을 듣고 궁중으로 청하여 설법하게 하였다.
뒤에 쇼도쿠태자(聖德太子)가 섭진(攝津)의 구악(驅嶽)에 중산사(中山寺)를 짓고, 낙성일에 그를 청하여 공양하고 주지에 임명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