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고종 31) 갑오경장으로 관제의 개혁이 거듭되어 내각(內閣)의 명칭 아래 7개 부가 새로 마련되었는데, 그 중 학부에서 당시의 새로운 문물을 수용할 목적으로 교과서를 개편하고 1895년부터 찍어내는 데 사용한 활자이다.
갑오경장 이후 의정부와 궁내부(宮內府)로 고쳐지고, 의정부 밑에 8개 아문(衙門)을 두어 왕정체제를 민주체제로 개혁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가운데 학무아문은 <홍범십사조 洪範十四條>에 이어 교육입국의 뜻을 밝힌 <교육조서 敎育詔書>를 반포하여 종래의 과거제도 중심 교육을 지양하고, 실용적·과학적 학문의 추구와 지(知)·덕(德)·체(體)의 균형교육에 치중하였다.
1895년 4월 학부에서는 각종 학교의 관제를 공포함과 동시에 소학교(小學校)를 서울과 지방에 잇따라 설립, 운영하였다. 이 때 학부편집국에서는 정치·사회·역사·지리·기예·도의 등 여러 분야에서 근대화의식을 수용할 수 있는 교과서를 새로 써서 널리 공급하여 주는 일이 매우 시급하였던 것이다.
당시 우리 나라에는 10여년 전에 도입, 사용하던 신연활자가 있었음에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응급조처로써 경종 초기 무쇠로 주조하여 쓰다가 마멸되어 그대로 별치해 두었던 후기교서관인서체자(後期校書館印書體字)와 그것을 자본(字本)으로 더 만든 한자와 한글 목활자를 섞어 사용하여 교과서를 찍어냈다.
당시 전해지고 있던 관주활자(官鑄活字)로서는 임진자(壬辰字)·재주정리자(再鑄整理字)·삼주한구자(三鑄韓構字)가 있었지만 활자가 크거나, 그 체의 한글활자가 부족하거나 없어서 이렇듯 부족한 한자와 한글 인서체목활자를 더 만들어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전사자(全史字)는 인쇄에 매우 적합한 활자이나, 본디 박종경(朴宗慶)이 사사로이 만든 활자이고 관주활자는 아니었다. 대원군이 한때 운현궁으로 몰수하여 쓴 적은 있었으나, 그것을 다시 입수하여 쓰는 것은 어려웠던 듯하다.
학부가 교과서 인쇄에 사용한 이 활자를 학부인서체목활자 또는 학부목활자라 일컫고 있다. 이 활자에서 글자획이 가늘게 닳고 일그러진 것은 교서관인서체철활자이고, 글자획이 굵고 먹색이 시커멓게 묻은 것은 새로 만든 학부목활자이다.
그런데 이 활자는 응급조치로 만들어 솜씨가 정교하지 못하여 1896년 ≪신정심상소학 新訂尋常小學≫ 등 새 교재를 찍을 때 재주정리자와 그 체에 맞게 새로 주조한 한글활자로 대치되었다. →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