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현전 ()

고전산문
작품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정의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구성 및 형식

국문필사본. 1책. 가문소설(家門小說)의 한 유형에 속한다. 이수봉(李樹鳳) 소장본과 서울대학교 도서관 소장본 등이 있는데, 표제에 있어 이수봉 소장본은 ‘韓康賢傳’으로, 서울대학교 소장본은 ‘韓江玄傳’으로 한자가 달리 적혀 있다.

이수봉 소장본에는 작품의 말미에 “숭정 기원후 병진”, “이 ᄎᆡᆨ 듀인는 선정 회ᄌᆡ선ᄉᆡᆼ 후 무첨종파 ᄌᆡ일가벌 셩듀○ 말녀 리소저 함규지물이라”는 필사기가 적혀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이 숭정(崇禎) 기원후(紀元後) 병진(丙辰), 즉 1676년(숙종 2)에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후손인 성주댁의 이소저(李小姐)에 의해 필사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1676년 이전에 창작된 작품인 것을 알 수 있다.

내용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명나라 때 소주 땅에 재상 한타가 나이 50이 되도록 자식이 없다가, 부인 위씨에게 태기가 있어 기뻐하던 중 득병하여 세상을 뜨고, 그 뒤 아들이 유복자로 출생하여 이름을 진한이라 하였다. 진한은 자라면서 벼슬살이가 싫어 낙향한 이승상에게서 글을 배우고, 나이 15세에 이승상의 딸 소애와 결연한다.

진한은 과거에 급제하여 한림학사가 되고, 가달의 난을 만나 이부상서 최간이 원수가 되고 진한은 중군장이 되어 출정한다. 최간이 진한의 전략을 무시한 채 가달을 공격하다가 크게 패한다.

진한은 가슴에 화살을 맞고 어머니와 부인에게 유서를 써 말갈기에 매어 집으로 보낸다. 부인 이씨는 유복자인 강현을 출산하고, 위부인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다.

진한이 죽자 말은 모래를 파고 그 시신을 묻은 뒤 서천을 향하여 크게 울고 고향 집으로 돌아온다. 말갈기에 매인 편지에 의해 남편의 죽음을 알게 된 이씨는 남편의 유해를 찾기위해 종 막석을 데리고 길을 떠난다. 말의 안내로 진한의 유해를 찾아와 선산에 안장하고 집에 돌아온다.

강현이 자라 15세에 등과하여 한림이 되고 석상서의 딸과 정혼한다. 강현은 서달의 난을 만나 대원수가 되어 익주로 출정하여 칙서(勅書) 한 장으로 적에게 항복을 받는다.

그 뒤 한원수는 병부상서가 되고 천자로부터 초왕공주의 청혼을 받는다. 강현은 이미 정혼한 몸이라 하여 거절하였으나 석소저와 혼인한 뒤에도 공주의 뜻이 꺾이지 않자, 또 결연하여 두 부인과 더불어 살게 된다.

이 때 북방이 도적에 의해 어지럽자, 상서가 순무어사로 출사하여 백성을 구휼하고, 도적을 인애로써 개유시키고 돌아온다. 그리고 광릉땅 강정에서 계모의 간계로 강에 떠내려오는 양소저를 구해준다. 그들은 의남매를 맺는데, 뒷날 양소저는 태자비가 된다. 한상서가 귀환하여 승상이 되고, 아버지 진한은 위왕에 봉해진다.

석부인은 아들 다섯, 공주는 아들 넷을 두었다. 태자비가 생남한 것을 기념하여 보인 경과(慶科)에서 다섯 아들이 모두 등과하고 한날 택일하여 결연한다. 다음 경과에서 승상의 네 아들이 모두 등과하여 정혼하고 벼슬을 돋우니 그 창성함이 비할 데 없다.

의의와 평가

이 작품은 그 창작연대가 17세기 후반 이전으로 확인되는, 우리 소설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이다. 17세기 후반에서 18, 19세기에 걸쳐 사대부계층을 주 독자층으로 하여 가문소설이 크게 발전하게 되는데, 이 작품은 그 효시적 작품이 되는 것이다.

한타-한진한-한강현, 그리고 그의 아홉 아들로 이어지는 가계의 역정을 그려 보임으로써 누대형(累代型) 가문소설의 양상을 잘 보여준다.

또 이수봉 소장본 「한강현전」의 말미에는 “구룡의 ᄒᆡᆼ실과 양비의 ᄉᆞ적이 다 구룡전ᄋᆡ 잇시니 ᄎᆞᄌᆞ 어더 보소서”라고 속편 「구룡전」에 대한 언급이 적혀 있어, 이 작품이 후대에 많이 나타나는 연작소설(連作小說)의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한강현전연구」(이수봉, 『파전김무조박사화갑기념논총』, 1988)
집필자
장효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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