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기의 향약방서(鄕藥方書)인 ≪삼화자향약방 三和子鄕藥方≫에 가편수집(加編蒐輯)한 것이다. 조선시대의 ≪향약집성방≫의 원본(原本)으로, 그 근간을 형성한 것이지만 산실(散失)되어 없기 때문에 ≪향약집성방≫에 인용되어 있는 유문(遺文)으로 추측할 따름이다.
이 책의 정확한 간행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고려 말기에 유행하던 향약방서들을 조선 초기에 수집한 것 같다고 하는 학설도 있다.
즉, 이 책이 고려 말부터 실용된 것이라면 1393년(태조 2) 정월 각도 의학교수의 교과용으로 사용된 ≪향약혜민경험방 鄕藥惠民經驗方≫에 앞서 반드시 추천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뜻에서 이 책은 태조 2년 정월 이후, ≪향약제생집성방 鄕藥濟生集成方≫이 편성된 1398년 이전에 성립된 것으로 믿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전부 고려시대에 실용되던 향약방으로 되었으리라 생각되는 까닭에 고려시대의 의약서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권근(權近)의 ≪양촌집 陽村集≫에는 ≪삼화자향약방≫이 너무 간략하여 권중화(權仲和)가 서찬(徐贊)에게 명하여 이 책을 저술한 것이라고 편찬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향약집성방≫의 병문(病門) 중에 풍병(風病)·적열(積熱)·학질·각기·요통·곽란·중독·부인과 난산·소아과 등 14문(門)에 걸쳐 50여 방문이 인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삼화자향약방≫에 의하여 이 책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다시 여러 방문을 더하여 ≪향약제생집성방≫이 생기고, 계속하여 ≪향약집성방≫으로 대성된 것이다.
≪삼화자향약방≫과 ≪향약간이방≫은 고려 말기의 것이고, ≪향약제생집성방≫과 ≪향약집성방≫은 조선시대의 소산이라고 확연하게 시대별로 구분할 것이 아니라, 고려 말기에 발흥되어 온 의약의 발전이 그대로 조선시대에 계승, 발전되어 온 것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는 문화적으로 연계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 책은 당시에 향약의 보급과 의료 확충을 목적으로 하여 우리의 국산의약품을 써서 쉽게 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노력한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