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조용상의 아들 조동섭(曺東燮)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정종호(鄭宗鎬)의 서문, 권말에 권도용(權道溶)의 발문이 있다.
7권 2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 연세대학교 도서관, 전남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시 82수, 권2∼5에 서(書) 134편, 잡저 8편, 권6에 서(序) 1편, 기(記) 1편, 서후(書後) 7편, 고유문 2편, 제문 16편, 행록 2편, 권7에 부록으로 행장·묘갈명·묘지명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에는 「차운운곡잡시기사십이수(次韻雲谷雜詩記事十二首)」와 「차운심재서정록이십수(次韻深齋西征錄二十首)」 등 차운에 의한 연작시가 있다. 후자에서는 「노량육신묘(鷺梁六臣墓)」와 「기자릉(箕子陵)」·「선죽교」·「만월대」 등 서울과 개성·평양 등 옛 도읍지의 자취를 돌아보며 역사를 회고하는 감개의 정취를 잘 나타내었다. 특히, 영남의 큰 학자 조긍섭(曺兢燮)과 주고받은 작품이 많다.
서(書)는 모두 134편으로 문집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가운데 곽종석(郭鍾錫)과 송병순(宋秉珣)·전우(田愚)를 비롯하여 조긍섭·김택영(金澤榮) 등 당대의 쟁쟁한 학자들과 주고받은 것들이 많다. 영남학파에 속한 저자의 면모가 뚜렷이 드러난다. 「상곽면우선생(上郭俛宇先生)」은 곽종석의 학덕을 기리며, 학문의 관심사를 문의한 내용이다. 조긍섭과 주고받은 12편의 편지는 주변의 여러 일을 적은 외에, 별지를 두어 성리학의 연원에 대해 토론을 벌이기도 하였다.
성리학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는 잡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퇴계선생논주자서변(退溪先生論朱子書辨)」은 『퇴계집』에 실린 조식(曺植)에 대한 이황의 글을 읽고, 세간의 조식에 대한 곡해를 바로잡아 조식과 이황 사이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변론한 내용의 글이다. 이밖에 「김사계답신용석이옥여서변(金沙溪答辛用錫李玉汝書辨)」과 「한강선생제명퇴양선생문동이변(寒岡先生祭冥退兩先生文同異辨)」·「주자문하서술고증(朱子門下敍述考證)」·「사지(私識)」 등도 모두 조식과 관계된 여러 사실에 대해 변정하고 여기에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 내용으로 되어 있다. 조식의 학문에 대한 정당한 자리매김을 위해 고심했던 저자의 일관된 노력을 읽을 수 있다. 조식에 대한 영남 지방에서의 여러 의논을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