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순국한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1706년에 창건하고, 이듬해 ‘顯忠祠’라 사액(賜額)되었다.
그 뒤 일본의 국권 침탈로 돌볼 수 없게 되어 한때 퇴락했으나, 1932년에 이충무공유적보존회(李忠武公遺蹟保存會)와 동아일보사가 성금을 모아 중건하였다. 광복 후 1967년 국가에서 현충사 성역화 사업을 마쳤다.
경역 면적은 16만 3096평이고, 주요 시설로 본전(本殿) · 구본전(舊本殿) · 유물관 · 고택(古宅) · 활터 · 홍살문(紅―門) · 정려(旌閭), 이면(李葂)의 묘소 등이 있다. 본전은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지금의 영정은 1953년 장우성(張遇聖)이 그린 것으로, 표준 영정으로 지정되었다.
구본전은 본전을 신축할 때 배전(拜殿)으로 이용하기로 하고 사적비(事蹟碑)와 함께 유물관 옆으로 이전하였다. 고택은 이순신이 자라난 집으로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왔으며, 몇 차례 중수 또는 개수되었다. 활터는 옛집 옆에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는 곳으로 이순신이 활을 쏘며 무예를 닦던 곳이다. 홍살문은 사당 경내를 표시하는 정문으로 1932년 중건 때의 자리에 있다.
정려에는 이순신과 조카 이완(李莞), 4대손 이홍무(李弘茂), 5대손 이봉상(李鳳祥), 효자 이제빈(李悌彬) 등 5인의 편액(扁額)을 보존하고 있다. 이면은 이순신의 셋째아들인데 임진왜란 때 21세로 이곳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가 왜군을 막기 위해 싸우다 전사하였다.
유물관에 전시된 주요 유물로는 『 난중일기(亂中日記)』 · 서간첩(書簡帖) · 임진장초(壬辰狀草), 장검(長劒) · 옥로(玉鷺) · 요대(腰帶) · 도배(桃盃), 명조팔사품[明朝八賜品 : 都督印 · 令牌 · 鬼刀 · 斬刀 · 督戰旗 · 紅小令旗 · 藍小令旗 · 曲喇叺] · 교지(敎旨) · 각종 무기 · 거북선 모형 · 유적 사진 · 해전도(海戰圖) · 거북선도[龜船圖] · 십경도병풍(十景圖屛風) 등이 있다. 그런데 이 유물관에 전시된 것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경상남도 통영시의 충렬사(忠烈祠)에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