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왕조가 몽고의 침입에 대항하여 강화(江華)로 도읍을 옮기고 흥왕이궁(興旺離宮)과 삼랑성가궐(三郞城假闕)을 지을 때 함께 세웠다고 한다.
이 혈구사는 고려시대에 유일하게 대일왕도량(大日王道場)이 베풀어진 사찰이어서 주목된다. 대일왕은 밀교(密敎)의 본존인 대일여래를 지칭하는 것으로 마하비로자나의 음역인데, 이 대일여래를 받들어 공양하는 법회가 대일왕도량이다.
몽고의 침입으로 그 어느 때보다 호국과 국가적 안녕에 대한 염원이 절실하던 시기인 1264년(원종 5) 6월 임자일부터 이 법회가 열리었는데, 사흘 후인 을묘일에는 국왕이 친히 참석하여 향(香)을 공양하였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절터는 해발 466m에 달하는 혈구산 동쪽 정상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상하 2단의 웅대한 축대가 잘 남아 있어 당시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