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평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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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의 서반부를 차지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평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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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북도의 서반부를 차지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평야.
개설

동쪽과 남쪽은 노령산맥(蘆嶺山脈), 북쪽은 금강(錦江), 서쪽은 황해와 접한다. 동서의 폭이 약 50㎞, 남북의 길이가 약 80㎞에 이른다. 행정구역으로는 전주·익산·군산·정읍·김제 등 5개 시와 부안·완주·고창 등 3개 군이 포함된다. 흔히 동진강(東津江) 유역에 펼쳐진 평야를 김제평야, 만경강(萬頃江) 유역에 펼쳐진 평야를 만경평야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연환경

전라북도 총면적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호남평야는 경관상으로 매우 평탄하고 단조로우나 지형의 구성은 복잡하다. 즉, 평야는 침식·하성(河成)·해성(海成) 등 복합적 요인으로 형성되었다.

호남평야의 지질은 대부분이 침식에 약한 쥐라기의 대보화강암(大寶花崗岩)과 편상화강암(片狀花崗岩)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오랫동안 침식을 받아 해수면 높이의 파랑상(波浪狀) 지형을 이루며, 제4기의 충적지(沖積地)는 부용천(芙蓉川)·동진강·만경강 연변에 넓게 분포한다. 한편 군산시 일대에는 간석지(干潟地)를 간척한 평야가 광대하게 전개된다.

만경강 유역과 동진강 하류의 충적평야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해발고도 30m 내외의 전형적인 준평원(準平原)을 이룬다. 호남평야는 노년기 말기의 지형에 가깝고, 중국의 요동반도에서 서해안 주변으로 연속하여 발달한 광대한 준평원의 일부로 볼 수 있다. 호남평야에 낮은 구릉이 넓게 산재하고 있는 것은 화강암 산지가 해수면 수준까지 침식된 후, 기반암인 화강암이 퇴적층 사이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현황

호남평야는 저위성(低位性) 평야이기 때문에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하천도 평야에서는 느린 속도로 곡류(曲流)한다. 만경강은 완주군의 원등산(遠燈山)에서 발원하여 호남평야 북부를 서류한 후, 군산 남쪽에서 황해로 흘러든다. 이 하천은 예로부터 관개와 주운(舟運)에 주로 이용되어 왔다. 과거의 가항거리(可航距離)는 대장촌(大場村)까지 37㎞였고, 그 사이에 신환포(新換浦)·목천포(木川浦) 등의 선착장이 있었으나 지금은 쇠퇴하였다. 만경강의 지류인 고산천(高山川) 상류에는 대아저수지(大雅貯水池)를 축조하여 호남평야 북부를 관개하고 있다.

동진강은 정읍시의 풍방산(豊方山)에서 발원하여 노령산맥을 횡단하고, 신태인읍에서 북서류하여 황해로 유입한다. 이 하천은 호남평야 남부의 관개에 이용되고 있다. 호남평야 남부는 섬진강댐의 물을 유역변경식으로 받게 되어 관개용수가 더욱 풍부해졌다.

원래 이들 하천은 넓은 호남평야에 비하여 규모가 작아서 전 지역을 관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삼국시대부터 벽골제(碧骨堤, 김제)·눌제(訥堤, 정읍)·황등제(黃登堤, 익산) 등의 저수지가 축조되었다. 특히 벽골제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저수지로 330년(비류왕 27)에 축조되었고, 그 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수축(修築)되었다.

벽골제의 제방은 김제시 부량면 포교리를 기점으로 월승리까지 남북으로 일직선을 이루는데, 현재는 약 3㎞의 제방과 수문지(水門址)임을 알려주는 3쌍의 거대한 석주(石柱)만이 남아 있다. 1925년에 있었던 간선수로(幹線水路) 공사로 인하여 벽골제의 원형은 크게 손상되었다.

해방 전 호남평야의 농경지는 일제의 토지회사와 자본가들이 점유하였고,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는 조선인의 농경지를 착취하였다. 해방 후의 대표적인 간척사업으로는 1963년에 시작되어 1979년에 완공된 계화도지구(界火島地區) 대단위 농업종합개발사업을 들 수 있다.

계화도는 원래 부안군 행안면 계화리에 속하는 면적 2.48㎢의 작은 섬으로 근해 수산업의 기지였다. 부안군 동진면 조포리에서 계화도까지 길이 9,254m의 제1호 방조제와 부안군 하서면 돈지리에서 계화도까지 길이 3,556m의 제2호 방조제를 축조하여 조성한 경지는 약 4,600㏊였다. 여기에 정읍 칠보발전소의 방류수(放流水)를 농업용수로 끌어들이는 길이 67㎞의 도수로(導水路)와 이 물을 저수하기 위한 청호지(晴湖池)가 건설되었다.

호남평야의 경지 면적은 약 18만 5000㏊로서 전라북도 총 경지면적의 약 72%를 차지한다. 전국 최대의 곡창인 이 지역의 농업은 미맥(米麥) 중심의 주곡에 편중되어 있어 논이 전체 경지 면적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1988년 미곡의 연 생산량은 약 40만 톤으로 김제시 8만 900톤, 익산시 6만 8000톤, 정읍시 6만 톤, 군산시 5만 2000톤 등의 순이었다. 쌀보리도 연간 약 19만 톤이 생산되었다. 그러나 1998년의 미곡 생산은 김제시 12만 9000톤, 익산시 10만 8000톤, 정읍시 9만 5000톤 등으로 증가하였다. 쌀보리는 1998년에 2만 5000톤이 생산되었다.

완주·김제·익산 등의 구릉지에서는 과수와 원예농업이 활발하고, 고창·부안 일대에서는 담배가 많이 생산된다. 또한 고창·정읍·신태인 등에서는 저마(苧麻)의 재배가 많이 이루어지며, 전주시와 완주군 이서면 일대 및 고창군에서는 낙농이 활발하다.

참고문헌

『한국지리: 우리 국토의 자연과 인문』(권혁재, 법문사, 2003)
『한국지지』지방편Ⅳ(건설부국립지리원, 1986)
『신한국지리』(강석오, 대학교재출판사, 1984)
『한국지명요람』(건설부국립지리원,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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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장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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