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3년(고종 20) 서경(西京)에서 일어난 필현보(畢賢甫)·홍복원(洪福源)의 반란이 진압된 뒤 이듬해 병부시랑(兵部侍郎)으로서 서경을 안무하였다.
그 뒤 간의(諫議)가 되어 1243년 최우(崔瑀)의 명으로 송국첨과 함께 안남(安南) 땅에 설치된 조거(漕渠: 배를 대기 위하여 만든 깊은 개울)를 설치하려고 하였으나, 여의치 않다고 하여 중지하게 하였다.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를 거쳐 원종 때에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으며, 일찍이 두 차례에 걸쳐 서북면(西北面)을 다스리면서 선정으로 지역민에게 칭송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