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숙용(叔容). 홍계연(洪季涓)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귀손(洪貴孫)이고, 아버지는 대사성 홍이평(洪以平)이며, 어머니는 이세필(李世弼)의 딸이다.
1524년(중종 1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사유(師儒)로 뽑혔다. 강원도도사로 재직 중 당시의 권신 김안로(金安老)·채무택(蔡無擇)의 무고로 파직되었다.
김안로가 사사(賜死)된 뒤 다시 등용되어 봉상시봉사·정언을 거쳐 1539년 세자시강원의 필선·시독관, 집의, 1542년 상주목사를 지낸 뒤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기억력이 비상하고 경학(經學)에 독실하였으며, 김안국(金安國)의 문인으로 용문산(龍門山)에서 조광조(趙光祖)와 같이 지낸 관계로 매우 친밀하였다.
주군(州郡)의 수령으로 나갔을 때는 옥사(獄事) 일으키는 것을 즐겨하지 않았고, 대간으로 있을 때는 모든 일을 원만하게 처리하였으며, 논박(論駁)으로 이름을 나타내려 하지 않았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