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룡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대사성, 이조참판, 금위대장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경견(景見)
시호
익헌(翼獻)
이칭
익풍부원군(益豊府院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94년(정조 18)
사망 연도
1863년(철종 14)
본관
남양(南陽, 지금의 경기도 화성)
주요 관직
동부승지|대사성|이조참판|금위대장|국구(國舅)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성, 이조참판, 금위대장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경현(景見). 홍주영(洪疇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병채(洪秉寀)이고, 아버지는 공조판서 홍기섭(洪耆燮)이며, 어머니는 장지면(張至冕)의 딸이다. 헌종의 국구(國舅)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35년(헌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대호군이 되고, 1839년에 한림소시(翰林召試)에서 선발된 뒤 홍문록(弘文錄: 홍문관의 제학이나 교리를 선발하기 위한 제1차 인사기록)에 올랐다. 그 뒤 동부승지·대사성, 병조·이조의 참판, 금위대장 등을 역임하였다.

1844년 딸이 헌종의 계비 명헌왕후(明憲王后)로 책봉되자, 익풍부원군(益豊府院君)에 봉하여졌으며 영돈녕부사에 올랐다. 이어 어영대장·총융사·훈련대장을 번갈아 지냈으며, 1849년(철종 즉위년)에 실록청지사를 겸하여 『헌종실록』의 편찬을 주관하기도 하였다.

1856년(철종 7) 화성유수로 잠시 머무르다가 다시 총융사·훈련대장을 역임하였고, 1862년 광주유수(廣州留守)가 되었다가 이듬해 죽었다.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익헌(翼獻)이다.

참고문헌

『헌종실록(憲宗實錄)』
『철종실록(哲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청선고(淸選考)』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