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척(洪陟)은 신라하대 구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산문(實相山門)을 개창한 선승이다. 그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에 생몰 연대, 구체적인 생애와 행적을 자세하게 알 수 없다. 그는 당에 유학하여 서당지장(西堂智藏, 735~814)의 법맥을 이었다. 홍척은 826년(흥덕왕 6)에 신라에 돌아오기 때문에 적어도 814년 이전에 당에 유학하여 10여 년 이상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남악(南岳)에 머물렀고, 830년 무렵 흥덕왕(興德王)과 선강(宣康) 태자의 부름을 받아 왕실을 방문하였다. 홍척의 활동 시기와 양상을 자세하게 알 수 없지만, 그의 제자인 수철(秀澈)에 대한 자료를 통해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수철은 처음 천종(天宗) 대덕에게 경전을 배우다가 830년대 초반 경주를 찾은 홍척을 만나 제자가 되었다. 이후 그는 설악산에 갔다가 실상사(實相寺)로 가서 홍척의 인가를 받았다. 또한 837년에 당에서 귀국한 원감현욱(圓鑑玄昱)이 실상사에 머물렀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홍척은 830년대에 실상사에서 활동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최치원이 839년 무렵 찬술한 지증대사비에 북산(北山)의 도의(道義)와 대비되어 남악의 홍척이라는 표현이 있으므로 홍척은 신라하대에 선종이 부각되는 초기에 도의와 함께 대표적인 선승으로서의 위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홍척이 표방한 선은 그의 스승인 서당지장이 마조도일의 제자이므로 마조선의 본령을 충실하게 따른 것으로 보인다. 당대(唐代) 선을 대표하는 마조도일의 선은 마음이 곧 부처[卽心是佛]이며, 일상의 있는 그대로의 마음이 도[平常心是道]라는 주장으로 요약된다. 마조는 수행을 통해 미혹한 마음을 부처의 마음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마음이 그대로 도이기 때문에 수행이 필요없다고 주장하였다. 곧 일상의 모든 행위가 불성이 드러난 것[作用卽性]이라고 바라보았다. 이와 같이 수행이 필요 없고,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사고는 그것에 수반하는 실천의 형태로 현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이상적 상태로 간주하는 평상무사(平常無事)의 사상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마조선의 핵심은 마조 문하의 선승들에게 폭넓은 영향을 미쳤으며, 신라 말 고려 초의 구산선문의 대부분이 마조선을 계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