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실상사 ( )

남원 실상사
남원 실상사
불교
유적
국가유산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智異山) 천황봉(天皇峯)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홍척이 창건한 사찰.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남원 실상사(南原 實相寺)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사적(1984년 10월 19일 지정)
소재지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33-3번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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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智異山) 천황봉(天皇峯)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홍척이 창건한 사찰.
개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역사적 변천

828년(흥덕왕 3)에 홍척(洪陟)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실상산문(實相山門)을 개산(開山)하면서 창건하였다. 홍척은 도의(道義, 道儀)와 함께 당나라에 들어가 선법(禪法)을 깨우친 뒤 귀국하였다. 그 후 도의는 장흥 가지산에 들어가서 보림사(寶林寺)를 세웠고, 홍척은 이 절을 세운 뒤 선종(禪宗)을 전파하였는데, 풍수지리설에 의거하여 볼 때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고 하여 이 절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그 뒤 2대조 수철(秀澈)을 거쳐 3대조 편운(片雲)에 이르러서 절을 크게 중창하고 선풍을 더욱 떨치게 되었다.

그러나 1468년(세조 14)에 화재로 모두 불타버린 후 200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고, 승려들은 백장암(百丈庵)에 기거하면서 그 명맥을 이어왔다. 그 뒤 1679년(숙종 5)에 벽암(碧巖)이 삼창(三創)하였고, 1684년 계오(戒悟)가 현재의 극락전(極樂殿)인 부도전(浮屠殿)을 지었다. 1690년에 침허(枕虛)를 중심으로 300여 명의 수도승들이 조정에 절의 중창을 상소하여 1700년(숙종 26)에 36동의 건물을 세웠다. 또한 1821년에는 의암(義巖)이 다시 중건하였으나 1882년(고종 19) 함양 출신 양재묵(楊載默)과 산청 출신 민동혁(閔東赫)에 의해 사찰건물들이 불타 없어지는 수난을 겪었으며, 1884년에 월송(月松) 등이 중건하였다. 1903년(광무 7) 익준(益俊)이 승당을 지었으며, 1932년 칠성각을 세웠다.

특히 불상에는 보화(寶貨)가 많이 들어 있다 하여 일찍이 도굴꾼들에 의해 훼손된 적이 있었다. 그 불상의 복장(腹藏)에는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원문(願文)과 사경(寫經) 및 인경(印經)이 수백 권이나 들어 있었고, 고려판 화엄경소(高麗板華嚴經疏) 등 보기 드문 서적도 몇 가지 있었다고 한다. 그 중 일부는 도난당하였고, 나머지는 건물과 함께 불타 버렸다고 한다. 1986년 요사로 사용 중인 선리수도원(禪理修道院)을 건립하였고, 1989년 천왕문을 세웠다. 1991년 범종각을 짓고, 1996년 화엄학림(華嚴學林) 강당과 학사를 건립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황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광전(普光殿)을 비롯하여 약사전 · 명부전 · 칠성각 · 선리수도원 · 누각 · 천왕문 · 화엄학림강당과 학사,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극락전과 부속 건물이 있다. 당우 가운데 보광전 안에는 조선시대에 조성된 비로자나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베트남에서 이운해 왔다는 종이로 만든 보살입상이 있고, 범종이 걸려 있다. 종은 1694년(숙종 20)에 만든 것으로 종을 치는 자리에 일본의 지도 비슷한 무늬가 있다. 이것을 치면 일본이 망한다는 소문이 떠돌아서 일제 말기에는 주지가 문초를 당하기도 하였다.

이 절에 소장된 중요문화유산으로는 백장암삼층석탑(국보, 1962년 지정)을 비롯하여,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실상사수철화상능가보월탑, 실상사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 실상사석등, 실상사부도, 실상사삼층석탑 2기, 실상사증각대사응료탑, 실상사증각대사응료탑비, 백장암석등, 실상사철제여래좌상이 있다. 또 백장암 청동 은입사 향로(보물, 1965년 지정), 실상사 약수암 목조탱화(보물, 1965년 지정) 등이 있다. 1974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서 1832년에 의암이 중건하면서 부도전에서 극락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내부에는 지불(紙佛)인 아미타여래좌상과 1985년에 조성한 아미타후불탱이 봉안되어 있다.

이 중 실상사삼층석탑은 상륜부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걸작품으로 불국사 석가탑의 상륜부를 복원할 때 이 탑을 본떠 복원하기도 하였다. 1980년 2월 2일 도굴꾼에 의하여 크게 파손된 것을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의 기술진들이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또한 약사전에 봉안되어 있는 철제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은 수철이 4,000근의 철을 들여 주조한 통일신라시대의 걸작품이다. 이 불상은 현재 지리산 최고봉인 천황봉과 일직선상에 있는데, 우리나라의 정기를 일본으로 보내지 않겠다는 호국적 이념에서 이곳에 안치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절에는 1979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실상사위전개량성책이 있으며, 절 입구에는 1969년 중요민속자료(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된 남원 실상사 석장승을 비롯한 석장승들이 남아 있어 장승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절 일원이 1984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실상사는 1998년에 문을 연 귀농학교로도 유명하다. 당시 주지스님이었던 도법스님이 만든 학교로서 1997년 우리나라에 IMF로 인해 실직자가 된 사람들 가운데 농촌으로 돌아와 정착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곳에서는 모든 작물을 유기농으로 재배하는 등 생태환경운동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 인드라망생명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지리산 실상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참고문헌

『전통사찰총서』9 전북의 전통사찰 Ⅱ(사찰문화연구원, 1997)
『한국사찰전서』(권상로 편, 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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