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별곡 ()

악장가사 / 화산별곡
악장가사 / 화산별곡
고전시가
작품
1425년(세종 7)변계량(卞季良)이 지은 경기체가.
정의
1425년(세종 7)변계량(卞季良)이 지은 경기체가.
개설

총 8장. 궁중에서 연악(宴樂)으로 쓰이던 송도가(頌禱歌)로서 악장문학에 속한다. 『악장가사』에 수록되어 있으며, 『세종실록』『증보문헌비고』에도 소개되어 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1425년에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조선 개국 후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고 나라의 기반이 안정되자 태종세종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다. 세종이 나라를 힘써 잘 다스려 태평성대를 맞이하였으므로 이를 기리고자 지은 것이 「화산별곡」이다. ‘화산(華山)’은 삼각산의 다른 이름이며, 서울을 지칭하는 말로도 쓰인다.

구성 및 형식

연장체(聯章體)로 되어 있으며, 각 장은 경기체가의 정형적 형식을 잘 유지하고 있다. 즉, 각 장이 전대절(前大節)과 후소절(後小節)로 이루어지고 6행씩이며, 각 행은 3보격과 4보격으로 되고, 제4행과 제6행은 ‘위∼景 긔 엇더ᄒᆞ니ᅌᅵᆺ고’로 양식화되어 있다.

내용

서울을 찬양하는 노래로서 1장은 빼어난 형세를 안고 있는 도읍지의 모습과 왕업을 확고하게 지켜나가는 장한 모습을 그렸다. 2장은 임금의 선정으로 나라 안팎이 태평성대임을 칭송하였다. 3장은 인의(仁義)를 몸소 실천하고 집현전 학자들과 더불어 학문을 숭상하는 세종의 모습을 그렸다.

4장은 군사훈련과 사냥 등을 통하여 무력을 기르는 세종의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자세를 그렸다. 5장은 백성과 신하, 형벌을 다스리는 일에 자상한 은혜를 베푸는 세종의 천세(千歲)를 기원하는 염원을 담았다. 6장은 서울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마치 신선들이 산다는 주1을 방불케 함을 노래하였다.

7장은 어질고 밝은 임금과 신하가 서로 만나 잔치하는 모습과 임금의 만세를 기원하는 염원을 담았다. 8장은 농상(農桑)을 권하고 민생을 두터이 하는 것이 나라의 근본을 기르는 것이며,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차리는 일은 민심을 굳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덕택이 지극하고 교화가 흡족하여 서울의 자연과 조선의 왕업이 함께 오래 지속되는 모습을 찬양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 작품은 작자의 개인 생각을 나타낸 것이라기보다 그 시대의 정치철학을 요약하여 제시한 느낌을 준다. 완성기의 경기체가로서 장르 양식의 확고한 틀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주목된다.

참고문헌

「화산별곡평석고(華山別曲評釋考)」(김창규, 『국어교육논지』9, 대구교육대학, 1982)
주석
주1

중국 전설에 나오는 봉래산, 방장산(方丈山), 영주산을 통틀어 이르는 말. 진시황과 한무제가 불로불사약을 구하기 위하여 동남동녀 수천 명을 보냈다고 한다. 이 이름을 본떠 우리나라의 금강산을 봉래산, 지리산을 방장산, 한라산을 영주산이라 이르기도 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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