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 및 석관 ( )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 및 석관 전경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 및 석관 전경
건축
유적
국가유산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전기 승려 진공대사의 유골을 봉안한 불탑. 승탑 · 석관.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 및 석관(原州 興法寺址 眞空大師塔 및 石棺)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63년 01월 21일 지정)
소재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6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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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전기 승려 진공대사의 유골을 봉안한 불탑. 승탑 · 석관.
개설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활동했던 진공대사 충담(忠湛)의 유골을 모신 승탑과 관련 유물을 담았던 석관이다. 탑비가 건립된 940년(태조 23) 무렵에 함께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강원도 원주의 흥법사지에 있었다. 1931년에 경복궁으로 옮겨졌고, 현재는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뜰에 있다.

내용

승탑은 신라 승탑의 전형적인 양식인 8각 원당형(圓堂形)으로 장식이 풍부하다. 여러 장의 판돌을 조합하여 네모난 바닥돌(지대석)을 깔고 그 위에 승탑을 세웠다.

하대석은 평면이 팔각형인데 지대석 위에 하대석을 받치기 위해 같은 팔각형으로 2단의 몰딩(molding)을 두어 자리를 마련하였다. 하대석의 아랫단에는 책상다리 문양의 안상을 새기고 그 틈새마다 다양한 모습의 연잎을 새겼는데, 마치 승탑이 연못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연잎 표현은 조선시대의 민화와도 통하고, 경복궁 아미산 굴뚝의 연잎 표현과도 유사하여 양식의 기원이 고려시대까지 올라갈 수 있음을 알려준다. 하대석 윗단은 2개의 볼록한 면을 가진 복판 형식의 연꽃잎이 아래로 향한 복련좌의 형태인데, 팔각대좌 각 면의 중앙에 하나씩, 그리고 모퉁이마다 하나씩 잎이 표현되어 모두 16개의 연잎이 돌려져 있다. 모퉁이에 있는 잎의 끝단은 ‘귀꽃’이라고 하는 화려하게 말려 들어가는 장식이 솟아오른 형태로 마감되어 있다. 이를 통해 아래로 향한 복련좌의 안정감과 위로 솟구치는 역동적인 두 힘의 조화를 보여준다. 그 위로는 중대석을 받치기 위한 팔각형의 받침이 솟아있다. 중대석에는 소용돌이치는 구름 사이로 두 마리의 용이 화염보주를 감싸고 돌며 웅비하는 모습을 앞뒤 대칭으로 표현하였는데, 깊이 있는 양각기법으로 역동적이다. 포효하는 용의 얼굴이나 몸에 난 비늘, 움켜쥔 발톱 등은 사실적이며 생동감이 넘친다. 상대석은 연꽃잎이 위를 향한 앙련좌인데 크기가 하대석보다 약간 작아 전반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표면에는 복판의 꽃잎이 두 겹으로 돌아가며 새겨져 있다. 하대석처럼 16개의 잎을 새겼으나 귀꽃은 만들지 않았다. 그 위로 팔각의 평평한 낮은 단을 마련하고 탑신에 해당하는 팔각원당형의 목조건축형 부재를 올려놓았다. 팔각 탑신부에는 서로 대칭되는 두 면에만 문비가 조각되어 있는데 자물쇠가 걸려있는 모습이다. 팔각의 모퉁이마다 낙양(落陽: 기둥과 문지방을 장식하는 구름 모양의 부재)이 부조되어 있고, 모퉁이 중간 부분에는 화려한 여의두문이 있어 매우 장식적이다. 지붕돌은 팔각평면형으로 하나의 돌로 조각되었는데, 밑면에는 3단의 괴임대를 두어 마치 목조건축의 공포부를 대신한 듯하고, 그 위로 2중의 서까래를 새겨 목조 건물의 겹처마를 묘사하였다. 특히 처마 서까래를 둥글게 처리하고 겹처마의 서까래는 네모나게 조각하여 실제 목조건축의 처마를 연상케 한다. 완만한 경사면을 지닌 지붕은 모서리마다 내림마루를 높게 표현하였다.추녀에서는 경쾌한 반전을 주어 위로 솟구치는 느낌을 들게 하였는데, 끝에는 높은 귀꽃을 달아 상승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또한, 지붕의 면마다 기왓골을 표현하였고, 추녀 끝도 암막새와 수막새 기와를 얹은 것처럼 조각해 사실성을 더하고 있다. 상륜부는 현재 보개(寶蓋)만 남아 있는데, 그 형태를 보면 아마도 태안사 광자대사 승탑, 혹은 여주 고달사지 승탑의 상륜부와 유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별도의 지대석 위에 놓인 석관은 진공대사의 유품을 경문(經文) 등과 함께 봉안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혹은 승탑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대사의 유골을 가매장했을 때 사용했던 석관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직사각형의 복두형 덮개돌은 단순한 형태이며, 석관에도 아무런 장식이 없다. 다만 하단부에는 이 석관을 받치는 듯한 책상다리 모양의 안상이 새겨져 있다. 비록 일부 깨진 부분도 있지만, 현재 전하는 승탑에 딸린 석관 가운데 원래의 모습을 거의 완전하게 갖추고 있어 자료적 가치가 크다.

특징

통일신라시대의 승탑 양식이 고려 초기에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세부적으로는 화려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고승의 입적에 걸맞게 장엄한 느낌이 있다.

의의와 평가

흥법사지에 있는 진공대사탑비(보물, 1968년 지정)의 비문 내용을 통해 제작연대를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승탑과 석관이 함께 남아 있어 불교식 장례법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참고가 된다.

참고문헌

『부도』(정영호, 대원사, 2003)
『신라와 고려시대 석조부도』(엄기표, 학연문화사, 2003)
『통일신라석조미술연구』(박경식, 학연문화사, 1994)
『한국미술전집7: 석조』(정영호 편, 동화출판공사, 1973)
집필자
주수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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