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자운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은 복장유물 중 1388년(우왕 14) 중수개금한 기문(記文)이 발견되어 실제 제작은 이보다 앞선 시기에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외에 1611년(광해군 3)의 중수원문도 함께 발견되었다. 복장에서 나온 유물은 1388년에 쓰여진 기문(記文), 1611년에 쓰여진 중수원문(重修願文), 1184년(명종 14)에 제작된 다라니와 같은 해 간행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권1∼6, 1215년(고종 2)에 간행된 『주금강반야바라밀경(註金剛般若波羅密經)』, 고려시대의 「삼신진언다라니(三身眞言陀羅尼)」와 「불정심다라니경패(佛頂心陀羅尼經牌)」 등 전적류 10건, 직물 57건, 금속류 기타 14건, 총 81건이 수습되었는데,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불상과 복장유물들은 역사적 ·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인정되어 2006년 12월 29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불상의 높이는 85㎝, 어깨너비 38㎝, 무릎폭 60㎝이다. 결가부좌를 하고 아미타 구품인(九品印) 계통의 설법인을 결하고 있으나, 현재의 손은 보수된 것으로 보인다. 머리는 나발에 정상계주와 중간계주를 두었고, 전체의 얼굴 윤곽은 둥글며, 양감이 풍부하나 다소 경직된 느낌이 든다. 목의 삼도(三道)는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고, 상의(上衣)의 옷깃 사이로 드러난 가슴은 양감이 없이 평면적으로 처리되었는데, 명치 부분에서만 가슴의 양감이 간략하게 표현되고 있다.
착의형식은 상의 위에 대의(大衣)로 오른쪽 어깨와 상완(上腕)을 가린 형식인데, 대의는 끝단에 굵은 띠를 두르고, 어깨에 걸쳐진 부분에는 평행선의 단으로 옷주름을 표현하였다. 상의도 가장자리에 굵은 옷깃을 두르고 있으며, 오른쪽 상의 자락은 대의 사이로 말려들어가고, 왼쪽 상의 자락은 결가부좌한 왼쪽 무릎 위로 흘러내리고 있다. 대의의 옷주름은 가늘면서 비교적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내의는 매듭이 없는데, 상단에 3단의 주름이 접히고, 그 아래로는 복부의 양감만 있을 뿐 밋밋하다. 군의의 옷주름은 깊지 않으면서 넓은 간격으로 조각되었다.
불상은 전체적인 비례로 보면 상체는 넓고 건장한 것에 비해 하체는 작고, 무릎은 낮게 묘사되었으며, 귓불이 얼굴에 밀착되지 않고 약간 앞으로 벌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불상은 복장유물이 함께 발견되어, 고려시대의 복장 봉안방식과 그 내용을 알 수 있게 해주며, 양식적으로는 고려 후기의 이른바 단아양식(端雅樣式) 불상으로부터 조선 전기의 불상양식으로 이행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의가 크다. 특히 다른 고려 후기의 목조불상인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개운사(開運寺) 소장의 목조아미타불좌상과 그 옷주름, 인체 및 안면 처리 등에서 유사한 면을 보이면서도, 전체적인 비례면에서는 조선 전기의 보살상인 경상북도 영덕의 장륙사(莊陸寺) 건칠관음보살좌상과 유사하여,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불상양식을 연결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