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 ()

강남구청
강남구청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서울특별시의 동남부에 위치한 구.
정의
서울특별시의 동남부에 위치한 구.
개관

동쪽은 송파구, 서쪽은 서초구, 남쪽은 경기도 성남시, 북쪽은 한강을 경계로 성동구와 접하고 있다. 위치는 동경 127°00'~127°00', 북위 37°27'~37°59'이다. 면적은 39.54㎢이고, 인구는 57만 6495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2개 행정동(14개 법정동)이 있으며, 구청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있다.

자연환경

한강의 침식 및 퇴적작용을 받아 저기복 구릉지를 이루며, 양재천을 기준으로 북동쪽으로 충적층이 발달하였고, 남부는 구릉성 산지로 되어 있다. 기반암의 지질은 대부분이 선캄브리아기의 경기변성암복합체(편암과 편마암)에 해당하며 암층과 하성층(河成層)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쪽에는 대모산(大母山, 293m)·구룡산(九龍山, 283m) 등이 연봉을 이루어 자연경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동쪽 탄천(炭川)은 북류해 한강으로 유입되며 하안공사가 이루어졌지만 물줄기는 곡류하고 있다. 그리고 관악산에서 발원한 양재천이 동류하여 구의 중앙을 지나 탄천에 합류된다. 본래 양재천은 직접 한강으로 유입되었으나 잠실 개발과 탄천 하구의 직강화(直江化) 공사로 탄천의 지류가 되었다. 따라서 한강 남안의 충적지는 뚝섬과 더불어 채소·화훼·과수재배가 성행하여 근교농업 중심지가 되었지만 현재는 대모산·구룡산 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도시화되어 있다.

기후는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바탕으로 한강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도시기후를 나타내고 있으며, 2008년도 연평균 기온은 13.3℃, 평균 최고기온은 17.5℃, 평균 최저기온은 9.7℃, 연 강수량은 1212.3㎜이다.

역사

강남구 일대에 주민이 생활하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시대로 올라간다. 우리 민족문화의 젖줄인 한강을 북쪽에 끼고 대체로 구룡산과 대모산의 북서쪽 기슭에 위치하여 양재천 남북의 구릉 및 평야지대를 이룬 천연의 지형으로서 일찍이 생활 터전이 되었다. 따라서 인근의 송파구·강동구와 더불어 한반도 선사문화의 대표적인 유적들이 곳곳에 남겨져 있다. 최근 삼성동 AID아파트 재건축 단지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굴되었으며, 역삼동(驛三洞) 지역은 한강변 구석기 유물 출토지로 보고되어 있다. 율현동(栗峴洞)에도 석기산포지가 있었고, 한강물이 마을 앞을 흐르던 압구정동의 옥곡(玉谷) 마을 뒷산에서 석기시대 돌도끼가 출토되기도 하였다.

또 1947년 개포동의 옛 지명인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반포리(盤浦里)에서 청동기시대 유적인 지석 4기가 발견되었다. 지석은 모두 2개의 주석과 1개의 개석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모두 기반식(碁盤式) 지석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택지개발에 따라 모두 없어져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한편 서울의 대표적인 청동기시대 유적이 역삼동에서 확인되었다. 역삼동 유적은 한강 지류의 하나인 양재천변 역삼동 산 21-1(현재 도곡동)의 표고 90m의 구릉상에 위치한 서기전 7세기~4세기 무문토기시대(無文土器時代)의 장방형 수혈식(竪穴式) 주거지였다. 청동기 유적은 대개 구릉지대나 산의 경사면에 위치해 있다. 이들은 하천과 깊은 관계를 가지며 생활용수를 확보하고 본격적인 잡곡농사를 지었으며, 후기에 들어 벼농사를 시작하였다. 벼농사의 시작은 청동기 문화와 경제생활의 대표적인 특성으로 농경 발전과 사회 변화의 계기가 된다. 즉 사유재산 제도와 계급 관계가 발생되면서 고대국가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강남구를 포함한 한강 유역을 무대로 최초의 정치세력이 등장한 것은 진국(辰國)과 삼한사회의 마한(馬韓), 그리고 초기 백제였다. 초기 백제국(伯濟國)은 마한 54개국의 하나로 북방유민들이 현 서울 지방인 한강 유역에 자리 잡은 군장 사회였다. 나아가 서기전 1세기 말 백제국이 마한을 정복하고 초기 고대국가인 백제(百濟)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한강 유역의 경제성을 이용하여 보다 많은 생산 활동과 인구 증가를 이루었고, 보다 큰 정치집단을 형성하여 4세기 중엽 근초고왕 때에 전성기를 이루었다. 475년 한강 유역은 고구려의 통치 하에 들어갔다. 553년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이래 신라 삼국통일의 전진기지가 되었다. 신라는 전국에 9주를 설치했고, 강남구를 포함한 서울 지방은 한산주(漢山州)에 편입되었다. 한산주는 757년(경덕왕 16) 지금의 서울 지방에 한양군(漢陽郡)을 설치하면서 한주(漢州)로 개칭되었다. 후삼국시대에는 왕건의 활동으로 태봉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강남구 일대에는 삼국시대 역사유적으로 삼성동 토성과 대모산성의 유구가 있다.

918년 왕건이 국왕에 추대되어 고려왕조를 개창함에 따라 한양군(漢陽郡)은 고려에 편입되었으며, 940년(태조 23) 전국의 행정구역을 재편성하고 주군현(州郡縣)를 개칭함에 따라 한양군은 양주(楊州)로, 한주는 광주(廣州)로 편제되었다.

고려 초기 광주 지역의 가장 강력한 호족으로는 왕규(王規)가 있었으며, 그는 두 딸을 태조의 제15·16비로 들였다. 또한 혜종의 장인이기도 하였다.

1310년(충선왕 2) 8월에는 광주목(廣州牧)이 지주사(知州事)로 격하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 다시 목으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1361년에 왕은 홍건적의 침입으로 한강의 사평나루 즉 지금의 강남구 신사동을 거쳐 안동으로 피난가기도 하였으며, 이규보(李奎報)는 사평원(沙平院)의 모습을 시로 읊기도 하였다.

강남구 지역을 관할하고 있던 광주는 조선 중기까지는 23개 면을 포용하는 경기도 내의 가장 큰 고을이었다. 이곳은 조선시대 말까지 군사기지로 주목을 받았으며, 남한산성(南漢山城)은 전란 때마다 방어성이 되었다.

현재의 강남구는 광주부의 언주면과 대왕면에 해당되었다. 언주·대왕면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1759년(영조 35)의 호구장부를 보면, 광주부의 언주면의 신원리·역촌리·양재리·방하교리·포전리·무동도리·청담리·부로도리·반곡리·압구정리·논고개리·저자도리의 12개 리(里), 대왕면의 노상리·송현리·사촌리·둔촌리·노하리·고산리·신곡리·세천리·지곡리·율현리·자양동리·수동리·궁촌수서동리·일원동리·둔전리·등자리·오야곡리 17개 리를 확인할 수 있다. 30년 후인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대왕면에 사촌리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조선시대 강남 지역은 한강변을 중심으로 농업 위주의 경제생활을 영위하였으며 수산업에도 종사하였다. 특히 압구정 앞 한강에서 나오는 민물게[蟹密魚]는 궁중에 바치는 특산물로 유명하였고, 과실로는 앵두(櫻桃)가 유명하였다. 조선 후기에 장시로 사평장(沙平場)이 있었는데, 사평도(沙平渡)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어 육의전 상인을 위협하기도 하였으나 그 실세는 송파장(松坡場)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교통수단으로 역원제도가 운영되었는데, 강남구 지역은 한강 조운로(漕運路)와 통하는 지역으로 삼남으로 연결되는 양재역(良才驛)이 있었으며, 한강 남안에 사평원(沙平院)이 운영되었고, 그 변형 형태인 참점(站店)으로 신원점(新院店)과 율현점(栗峴店) 등이 있었다.

1914년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경기도 내 36개 군 가운데 16개 군이 폐합되어 20개 군만 남게 되었다.그중 강남구 지역이었던 광주군 언주면·대왕면은 큰 변화가 없었으나, 시흥군 신동면 지역은 과천군의 일부 지역을 편입하는 등 큰 변화가 있었다. 이때 자연 마을을 묶어 리(里)·동(洞) 체제를 갖추었으며, 각 면에 면사무소를 두었다. 사실상 그 이전까지는 뚜렷한 면사무소도 없이 면장(호칭도 여러 가지였음)의 사택(私宅)이 곧 면사무소 역할을 했다. 이때 언주면사무소는 염곡동, 대왕면사무소는 괴하동, 신동면사무소는 우면리에 위치하였다. 그리고 오늘날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의 인구수는 1925년에 약 2만 명, 1940년에 2만 3237명, 1944년에는 2만 3661명으로 당시 농촌지역의 일반적인 현황이었다. 특히 배 밭 경영과 양잠이 많았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는 1963년 1월 1일 이전의 강남구 지역은 고요한 농촌지대였다. 그리고 1949년의 농지개혁으로 과거 소작인이었던 다수의 농민이 자작농이 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 때는 다수의 군인과 민간인들이 한남·서빙고·뚝섬 등의 나루터에서 나룻배로 도강, 강남 지역으로 후퇴하였다. 이후 언주·신동면의 농업경작 형태가 쌀농사 중심에서 채소재배 중심으로 변해갔으며, 당시 강의 남북을 왕래하는 나룻배는 채소보따리로 가득 찼다고 전해지고 있다.

1963년 1월 1일을 기하여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이 크게 확장되었다. 이때 광주군 언주면 전역과 대왕면 중 5개 동리가 성동구에 편입되었는데, 오늘날 그 대다수는 강남구가 되어 있다. 즉 성동구 언주출장소 관내로 도곡동·역삼리·도곡리·포이리·개포리·사평동 신사리·압구정리·학동·논현리·수도동 삼성리·청담리·대치리·탑곡동·염곡리·내곡리·신원리, 천호출장소 관내로 일원동·수서동·자곡동·율현동·세곡동이 편입되었다. 1973년 종전의 언주·신동출장소가 폐지·병합되어 영동출장소가 되었으며, 이때 영동출장소 관할구역은 오늘날 강남·서초 양구가 되어 있는 지역 외에 현재는 송파구를 형성하고 있는 잠실동·신천동도 포함된 모두 27개 동이었다.

1975년 성동구로부터 강남구가 분리·신설되면서 영동출장소는 폐지되었다. 이어 ‘강남개발’을 계기로 인구가 급증하여, 1979년에 청호출장소를 승격하여 강동구를 분리하였다. 1988년 강남구에서 서초구가 분구되었다. 1988년 5월 1일 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라 자치구로 승격되었으며, 14개 법정동에 22개 행정동을 관할하고 있다.

또 한국종합무역센터·종합전시관·대한주택공사·관세청 등의 주요기관이 위치하고 있어, 구의 위상을 더 높이고 있다.

유물·유적

봉은사에는 삼성동의 봉은사 경내에 봉은사 선불당(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 봉은사 판전 현판(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992년 지정),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992년 지정), 홍무25년 장흥사명 동종(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991년 지정) 등의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삼성동에 조선시대 성종과 그의 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능인 선릉(宣陵)과 중종의 능인 정릉(靖陵)인 ‘서울 선릉과 정릉’이 1970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수서동에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묘역(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이 있다. 역삼동에는 오공신회맹축(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996년 지정)이 개인소장으로 있다.

그 외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로 서울 송절주(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1989년 지정), 민화장(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1996년 지정)이 그 전통 기술을 유지하면서 전승되고 있으며, 압구정동에 우암 송시열 초구 1령(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1977년 지정)이 개인소장으로 있다.

교육·문화

이 지역은 신흥 주거·업무공간으로 대학교는 없으며, 아파트 밀집지역에 따른 학생의 증가로 2015년 현재 초등학교 33개교, 중학교 24개교, 고등학교 21개교, 특수학교 2개교의 많은 학교가 이전·설립되어 있다. 특히 ‘8학군’이라 칭하는 속칭 일류학교가 많이 분포되어 있다. 삼성동에 강남교육청이 있어 초등교육과정을 총괄하고 있다. 그 외 서울일본인학교와 서울아카데미외국인학교가 있으며, 국제고등기술학교가 있다. 사회교육 시설로 국립중앙도서관 역삼분관, 시립강남도서관, 시립개포도서관 등이 있다.

문화시설로 각종 박물관, 도서관, 공연장, 전수회관, 화랑, 영화관 등을 비롯하여, 구민의 문화생활 향상을 위하여 활동하는 강남문화원이 있다. 강남구의 현대적 전시관과 박물관으로는 한국자수박물관이 있으며 특히 중요무형문화재 전수회관은 한국문화재 보호재단에서 운영하는 주요 문화시설로 전시실과 공연장을 갖추고 있어 현대인의 뿌리 깊은 얼을 체험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0여 개의 일원청소년독서실을 비롯한 복지관 등의 공동독서실이 운영되고 있다.

공연장으로 엘지(LG)아트센터가 2000년 3월 개관되었는데, 국내 공연장 중에서 음향 시설이 가장 완벽하고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있어 강남문화를 이끌어 가고 있다. 그리고 LG아트센터 상남홀 내부에는 사설 연극중심의 복합문화공간인 유시어터가 있다. 화랑으로는 가산화랑을 비롯한 20여 개의 시설이 있으며, 영화관 및 공연장으로는 동영아트홀(구 계몽아트홀)·씨네하우스·메가박스·CGV 등 개봉관을 비롯한 14개의 대형 시설이 있다.

공공체육시설로는 구민체육관과 테니스장이 있으며, 800여 개의 민간 체육시설이 있다. 특히 용두천, 구룡천, 개암, 옛약수, 매봉, 강남, 청담, 대치근린공원, 개포근린공원, 신사근린공원, 매봉산 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기타 게이트볼장, 배드민턴장, 정구장 등이 있다.

민속

세시풍속은 세시(歲時)·세사(歲事)·월령(月令)·시령(時令)이라고도 한다. 세시풍속은 명절과 깊은 관계를 가지며, 사계절이 분명하여 계절에 따라 다양하게 전승되었다. 특히 농경과 관련하여 춘경(春耕)과 추수(秋收) 과정에서 많은 풍속이 생겨났다. 강남구는 토박이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옛 풍습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도시화된 아파트단지에서는 일상생활의 연장 속에서 유지되고 있다. 특히 정월 설날과 보름날, 사월 초파일, 한식, 단오, 칠석, 추석, 동짓날 등의 세시풍속이 잘 전해지고 있다.

전통 민속놀이 또한 1970년대 이후의 도시화에 따라 현재는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서울에 편입되기 이전의 민속놀이로는 윷놀이·널뛰기를 비롯하여 달맞이·거북놀이·줄다리기·다리밟기·쥐불놀이·연날리기·화전놀이·그네·두레농악·자치기·공기·제기차기 등 전국적으로 분포된 놀이가 행해졌다.

설화·민요

강남구에는 이곳에 살던 인물과 역사적 사건 등과 관련하여 여러 설화가 전하고 있다. 먼저 ‘홍순언(洪純彦)과 중국 강남녀(江南女) 설화’가 있다. 청담동 출신의 홍순언은 조선 선조 때 한어역관(漢語譯官)이었다. 그는 사신을 따라 중국 연경(燕京)에 갔다가 부친의 장례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청루에 나서게 된 어느 여인을 구해주게 되었다. 그 여자는 후에 명나라 병부상서 석성(石星)의 부인이 되어 보은단(報恩緞)이라고 수놓은 비단을 준비하고 있다가 홍순언을 만나 은혜에 보답하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당시 명(明)의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조선 태조 이성계 아버지의 이름이 잘못 기재되어 있던 것을 바로잡는 종계변무(宗系辨誣)와 임진왜란 때 명의 원군이 오는 과정 등에 강남녀와 그의 남편 석성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 이야기를 적은 비가 현재 청담동 청담공원 내에 있다.

또 헌릉(獻陵)의 태종 신도비에는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 땀을 흘린다는 설화가 전한다. 임진왜란 때 왜군대장이 헌릉에 이르자 비석의 귀부(龜趺) 부분이 움직였다. 깜짝 놀란 왜장이 철퇴로 귀부의 목을 치자 벼락 치는 소리가 나며 뻘건 피가 흘러내리자 왜장이 크게 놀라 급히 쇠줄로 깨진 부분을 얽어매게 하고 제사를 지냈다. 그 뒤부터 국가에 큰 변고가 있을 때마다 귀부의 잘린 부분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려 주민들이 기이하게 여겼는데, 6·25전쟁이 발발할 때도 역시 땀이 흘렀다고 한다.

삼성동 봉은사 앞뜰을 ‘중의 벌’, ‘승과평(僧科坪)’이라 부르고 있다. 조선 제11대 왕 명종 때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고 있었다. 이때 문정왕후의 후원으로 보우(普雨)가 봉은사에 머물며 승려들의 과거시험인 승과를 주관하게 되었다. 그러자 온 나라 안의 중들이 모여들어 무려 수천 명에 이르렀다. 그 때문에 시험장소가 좁아 많은 응시자를 수용하고자 봉은사 앞뜰의 넓은 들판을 승과 시험장소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승과평’이라 부른다.

그 외에 강남구에는 세곡동 마고개의 장사설화, 인조임금이 ‘이괄의 난’을 피하여 공주로 내려갈 때 말 위에서 죽을 드셨다는 말죽거리 설화, 양재역 벽서사건 설화, 한명회의 압구정 설화, 대치동 은행나무 앞의 영산단(靈産壇) 설화, 역삼동 임금님묘터 설화, 효자 김의신 설화, 말무덤과 범바위 설화 등이 전한다.

산업·교통

1960년대 말부터 영동개발이 시작되자 농촌경관에서 주택지구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강남구 지역은 고용창출과 도시경제적 측면에서 자활능력을 갖추지는 못했으나, 점차 저인구밀도에 중·고등학교 같은 교육기관의 신설과 이전으로 주거지역으로서 양호한 조건을 갖추어 나갔다. 최근 사무실용 빌딩의 건설, 각종 연구소 등의 이전, 그리고 대형 백화점·쇼핑센터 등의 집중적인 개점과 건설로 강남의 고급 상권을 형성하고 있으며 생활여건이 완비된 주거지역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강남구는 철저한 계획도시로서 도로망이 잘 정리되어 있으며 무역·금융·경제기능이 집중된 테헤란로, 문화·예술·패션의 중심지인 예술의 거리 압구정로, 각종 가구의 거리인 학동로 등 지역별로 특화·발달한 경제·문화·교육의 도시이다. 특히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금융·보험업, 기업체, 무역업체 등이 밀집하고 최첨단 벤처기업들이 포진한 미디어 밸리를 형성하고 있다. 2000년 아셈(ASEM)단지의 완공으로 컨벤션 산업의 기틀까지 완비한 강남 지역은 새 천년 첨단산업의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구축하고 있으며, 도심공항터미널이 인접한 21세기형 국제적인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아울러 코엑스(COEX)는 우리나라 무역 업무를 총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지역은 ASEM단지, 공항터미널, 호텔, 백화점, 수출입 유관기관이 한데 어울려 있는 강남의 최대 업무지역이다. 국내외 비즈니스맨과 바이어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경제의 중심지이다. 논현동 가구거리는 국내외 유명 메이커 가구들이 총집결하고 있어 가구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가구유통의 메카가 되었다. 청담동 패션의 거리는 프랑스 샹젤리제 거리를 방불하게 하는 패션 룸이 밀집한 거리로 국 국내외 비즈니스맨과 국내외 유명 패션 디자이너의 패션 감각이 넘실대는 한국패션의 1번지가 되고 있다.

강남구 지역은 고려시대 이후 사평나루가 있어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어지는 교통요지였다. 따라서 사평원·양재역·신원 등 역원이 발달하였으며, 삼남으로 향하는 통로가 되었다. 서울에 편입되기 이전 강북을 잇는 교통수단은 한남동나루와 뚝섬나루를 내왕하는 나룻배를 이용했다. 1963년 서울에 편입된 이후 점차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한남대교·영동대교·성수대교·동작대교·동호대교 등의 가설로 도심과 바로 연결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한남대교가 완공되면서 강남구 남북으로 경부고속도로가 통하고, 인근 서초구에 강남종합고속버스터미널과 화물터미널이 자리 잡게 됨에 따라, 그 도로망이 연결되어 우리나라 육상교통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아울러 남부순환로가 서울의 남부지역을 동서로 횡단하여 김포국제공항에 이른다.

강남구의 도로는 구조상으로 볼 때 개발과정에서 현대도시의 주요 교통수단인 자동차 이용에 적합하게 토지이용이 계획되어 주요 간선도로망은 직교식(直交式)을 이루고 있다. 넓게 확 트인 도로가 바둑판처럼 규칙적으로 곧게 뻗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도로율을 점하고 있다. 따라서 시가지 도로만을 보면 세계적인 도로망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도로 가운데 영동대로·강남대로·남부순환로가 강남구의 중심가로망을 이루고 있다. 강남대로는 한남대로 남단을 기준으로 서초구와 경계를 이루며 경부고속도로와 나란히 남쪽으로 뻗어 있다. 이 길은 압구정로·잠원로·도산대로·학동로·신반포로·봉은사로·사평로·테헤란로·도곡동길·역삼로·남부순환로와 교차한다. 남부순환로는 강남구·서초구·동작구·관악구·구로구·강서구를 통과하며 27개 도로와 교차하게 됨에 따라 서울 남부지역을 순환하는 주요 교통로로서 구실하게 되었다.

강남구에는 서울의 지하철 제2·3·7·9호선과 분당선, 신분당선이 연결되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지하철 2호선은 강남구 중앙을 동서 방향으로 가로지르며, 3호선은 성동구에서 한강을 건너 압구정역으로부터 수서역에 이르기까지 구의 남북으로 지나다 다시 동서 방향으로 운행된다. 7호선은 동작구로부터 구의 중앙을 동서로 횡단하며 고속버스터미널과 청담역을 연계하고 있으며, 9호선은 신논현역~봉은사역 구간이 강남구를 지난다. 분당선은 압구정로데오~수서 구간이 관내를 지나고 있으며, 신분당선은 강남구와 수원시를 연결하고 있다. 2016년에 개통한 수서평택고속선은 강남구 수서역을 기점으로 화성시와 평택시를 연결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관광

강남구에는 청계산·인릉산과 그 줄기인 대모산·구룡산이 있어 경관이 수려하고, 반포천·양재천·탄천이 한강으로 흘러들면서 수려한 풍광을 자아내어 자연경관 자체가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한강에는 유람선이 왕래하고 잠원 지구와 반포 지구에는 각종 체육시설과 낚시터·수영장·보트장·자전거도로 등이 있어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선릉과 정릉이 있는 삼릉공원과 도산 안창호 선생의 묘역과 기념관이 있는 도산공원이 있어 산 역사교육장이 되고 있다. 대모산 남쪽 기슭에는 헌·인릉과 관련된 유적과 소나무숲과 오리나무숲이 우거져 있고, 광평대군 묘역이 우리 전통의 묘제를 보여주고 있어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 그리고 세종의 5남 광평대군의 종가인 전통가옥 필경재에서는 궁중요리를 제공하고 있어 우리나라 전통요리의 일품을 외국관광객에서 보여주는 좋은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그리고 한국자수박물관과 무형문화재전수관이 있어 우리 전통예술을 관광자원으로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인터컨티넨탈서울, 르네상스서울, 리츠칼튼서울, 아미가 등 특1급 호텔을 비롯한, 각종 숙박시설이 있어 항상 외국 바이어와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다. 아울러 대형 백화점은 좋은 관광쇼핑 장소가 되고 있다.

강남구는 농촌지역이었지만, 1963년 서울에 편입되어 도시화된 곳으로 전통 민속시장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21세기 새로운 풍속도를 그리는 새로운 상업문화를 보여주는 곳으로 유명하며, 아울러 새로운 먹거리촌을 형성하고 있다. 압구정동 일대 갤러리아백화점 맞은편을 중심으로 현대백화점 맞은편까지의 압구정로 골목의 사이사이는 개성 있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젊음의 집합소이다. 로데오거리도 이곳에 위치해 있다. 이와 비교하여 청담동 일대는 화랑들과 고급 패션숍들이 많아 보다 여유 있고 한적하며 고급스런 멋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반면 강남역 일대 강남대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이 지역은 일명 ‘강남’으로 통하는 강남구 지역 젊은이들의 집합 장소로, 고급 유흥업소가 많기로 유명하고 어학원, 서점도 자리하고 있어서 거리마다 활기가 느껴진다.

강남문화축제가 매년 5월에 개최되며, 청담미술제는 매년 6월에 청담동 화랑거리에서 열린다. 압구정 거리축제는 매년 5월에 강남구 주최로 열리며, 강남 국악한마당과 강남 동요제가 매년 11월에 강남문화원 주최로 열린다. 그리고 강남구에서는 목요상설무대를 매주 목요일에 강남구민회관에서 개최한다. 아울러 지역 문화예술단체의 활동도 활발하다. 대표적인 지역 문화예술단체는 강남구립합창단, 강남교향악단, 강남문인협회가 있어 정기적인 문화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동(洞)
  1. 신사동(新沙洞)

강남구의 북쪽 한강변에 있는 동이다. 동쪽은 청담동, 북쪽은 압구정동, 서쪽은 잠원동, 남쪽은 논현동과 서초구 반포동과 접해 있다. 신사동사무소와 압구정1·2동사무소에서 행정을 담당하고 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어 언주출장소 관할이 되면서 신사동이 되었다가, 1975년 강남구 신설로 이에 속하게 되었다.

한남대교가 놓이기 전에는 새말나루터가 있어 강북으로 이어졌다. 또 조선시대 이후 사평원이 있었고, 나루를 중심으로 시장이 서서 상업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1968년부터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진행되어 한남대교가 개통되면서 발전하기 시작하였으며, 한남대교와 이어진 강남대로 등 많은 도로들이 지나고, 경부고속도로와도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이다. 유흥업소와 상가건물이 밀집해 있다.

  1. 압구정동(狎鷗亭洞)

강남구 북쪽 한강변에 있는 동이다. 동쪽은 청담동, 서쪽은 신사동과 접해 있고, 북쪽은 한강을 넘어 성동구의 옥수동·금호동과 마주보고 있으며, 남쪽은 논현동과 접해 있다. 조선시대 세조 때의 권신 한명회(韓明會)가 지은 압구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붙은 이름이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어 언주출장소 관할이 되면서 압구정동이 되었다가, 1975년 강남구 신설로 이에 속하게 되었다.

옛 압구정이 있던 곳은 한강 너머 멀리 삼각산 봉우리들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명승지였다. 광복 이전까지 강변에 있는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었던 곳으로, 배 밭 등 과수원이 있었다. 1968년부터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진행되어 한남대교가 개통되고 이어 성수대교·동호대교·강변도로(올림픽대로) 등이 건설되면서 발전하기 시작해 강남의 최고급 주택지가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대형백화점 등이 조성되면서 고급 상업지역으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압구정로 등 많은 도로와 지하철 3호선이 지나 교통이 편리하며, 로데오거리로 불리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유흥거리로 유명하다.

  1. 논현동(論峴洞)

강남구 북쪽에 있는 동이다. 동쪽은 삼성동, 서쪽은 서초구 잠원동·반포동, 남쪽은 역삼동, 북쪽은 신사동과 접해 있다. 논밭의 벌판에 논고개가 있던 데서 연유한 이름으로, 강남대로와 도산대로 남동쪽에 해당된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어 언주출장소 관할이 되면서 논현동이 되었다가, 1975년 강남구 신설로 이에 속하게 되었다. 1982년 종전의 학동(鶴洞)이 논현동에 편입되었다.

1960년대 말까지 전형적인 농촌 모습이었으나, 한남대교 개통과 강남대로가 놓여지고 영동시장 등 상권이 형성되면서 강남구의 중심지로서 고급 주택과 상업·업무지역으로 탈바꿈하였다. 특히 논현사거리에서 영동사거리 일대에 가구단지가 형성되어 전문 가구 시장으로 유명하다. 강남대로, 봉은사로, 논현로, 도산대로, 언주로 등 도로가 바둑판 식으로 나 있고 지하철 7호선이 지나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관세청·칠레대사관 등 많은 공공기관과 각종 시중은행의 지점이 집결되어 있다.

  1. 청담동(淸潭洞)

강남구 북동쪽 영동대교 남단의 한강변에 있는 동이다. 서쪽은 압구정동·논현동, 남쪽은 삼성동, 북쪽은 한강을 경계로 성동구 성수동·자양동, 동쪽은 한강과 접하고 있다. 한강변의 물이 맑아 이 마을을 청숫골이라고 한 데에서 동 이름이 유래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어 언주출장소 관할이 되면서 청담동이 되었다가, 1975년 강남구 신설로 이에 속하게 되었다.

1973년 영동대교가 놓이기 전에는 전형적인 강촌으로 청담도선장을 통하여 강북으로 왕래하였다. 영동대교와 청담대교로 강북과 이어지며 도산대로와 영동대로가 지나고, 청담대교에 지하철 7호선이 놓이고 3개 역이 설치되어 있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청담공원이 아파트촌 중심부에 있어 주민의 휴식공간이 되고 있으며, 올림픽대로변에 조성된 청담도로공원에는 한강종합개발사업 준공기념탑과 전망휴게소인 팔각정이 있다.

  1. 삼성동(三成洞)

강남구 북동쪽 영동대로와 테헤란로 서북쪽에 있는 동이다. 탄천 하구 서쪽에 있으며, 동쪽은 송파구 잠실동, 서쪽은 논현동·역삼동과 접해 있고, 남쪽은 대치동·도곡동, 북쪽은 청담동과 접해 있다. 닥점, 봉은사(奉恩寺), 무동도(舞童島)와 부리도(浮里島) 등의 세 마을을 합하여 삼성리(三成里)라고 한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어 언주출장소 관할이 되면서 삼성동이 되었다가, 1975년 강남구 신설로 이에 속하게 되었다.

영동대로 변에는 경기고등학교, 한국종합전시장, 무역센터 등이 있으며, 탄천변에는 강남소방서, 강남병원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수도산 남쪽 기슭에는 봉은사가 있으며, 봉은사로 건너편에는 조선 성종과 정현왕후의 선릉과 중종의 정릉이 있는 삼릉공원이 있다.

  1. 대치동(大峙洞)

강남구의 중앙 동쪽에 있는 동이다. 동쪽은 탄천을 경계로 송파구 잠실동과 접하고, 서쪽은 도곡동, 남쪽은 양재천, 북쪽은 삼성동과 접해 있다. 자연마을인 한티마을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어 언주출장소 관할이 되었으며 1975년 강남구 신설로 이에 속하게 되었다.

이 지역은 하천부지로 습지(濕地)였으나 1970년대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크고 작은 빌딩과 고층아파트가 속속 들어서 서울 남부의 중심지로 탈바꿈하였다. 동서로 남부순환로가 지나며, 도곡동길, 역삼로, 테헤란로, 선릉로가에는 상가와 업무용 빌딩들이 많이 들어서 있고, 특히 벤처산업의 요람으로 이름 높다. 대치3동에는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서울특별시 지정보호수 제27호)가 있는데, 그 앞에 영산단(靈産壇)이라는 비가 세워져 있다.

  1. 도곡동(道谷洞)

강남구의 중앙 서쪽에 있는 동이다. 뒤쪽에 매봉산이 있으며, 동쪽은 대치동, 서쪽은 역삼동, 남쪽은 양재동·포이동, 북쪽은 삼성동과 접해 있다. 양재천 북쪽 매봉산 아래 산부리에 돌이 많이 박혀 있어 독부리라고 하던 것이 변하여 독구리, 독골이 되어 도곡이라고 지명이 유래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면서 옛 이름 독골을 되찾아 도곡동이 되었다. 1975년 신설된 강남구에 속하였다가 1988년 서초구를 거쳐 1989년 다시 강남구에 편입되었다.

동서로 남부순환로가 지나며, 역삼로, 선릉로, 논현로, 언주로와 매봉터널 등 도로망이 잘 되어 있으며 지하철 3호선과 분당선이 지나 교통이 편리하다. 조선시대에 한양을 왕래하는 사람들이 하룻밤 묵어가는 마을이었으며, 청동기시대 주거지가 발굴되었다. 177번지에는 효자비와 보호수인 수령 700년의 느티나무가 있는데, 동제당(洞祭堂)이 행해졌다.

  1. 역삼동(驛三洞)

강남구의 중앙 서쪽에 있는 동이다. 동쪽은 도곡동·삼성동, 서쪽은 서초구 서초동, 남쪽은 서초구 양재동, 북쪽은 논현동과 접해 있다. 조선시대 한강을 건너기 전의 마지막 역마을이었던 말죽거리, 상방하교, 하방하교 등 세 마을을 합친 데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면서 역삼동이 되었으며, 1975년 강남구에 속하게 되었다.

강남대로 중앙에서 지하철 2호선 강남역을 만나 서울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하며 봉은사로, 선릉로, 논현로, 언주로, 역삼로, 테헤란로 등이 바둑판식으로 교차하여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1. 포이동(浦二洞)

강남구의 남서쪽에 있는 동이다. 북쪽은 도곡동, 남쪽은 서초구 염곡동, 서쪽은 서초구 양재동, 동쪽은 개포동과 접해 있다. 1963년 1월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어 언주출장소 관할이 되었고, 1975년 강남구 포이동이 되었다.

전형적인 농촌지역이었으나 주변에 있는 개포동의 토지구획정리사업과 더불어 개발되기 시작하여 도시화가 이루어졌으며, 최근 벤처기업이 입주하고 있다. 동서 방향으로 양재대로가 통과하여 경부고속도로와 연계된다. 사찰로 통도사에서 서울특별시 지역의 포교당으로 세운 구룡사와 능인선원이 있어 불교신도들의 새로운 전당이 되고 있다.

  1. 개포동(開浦洞)

강남구의 남쪽에 있는 동이다. 양재천 남쪽이자 구룡산·대모산 북쪽 기슭에 있다. 남쪽은 서초구 내곡동, 동쪽은 일원동, 북쪽은 대치동·도곡동, 서쪽은 포이동과 접해 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어 언주출장소 관할이 되면서 개포동이 되었다가, 1975년 강남구 신설로 이에 속하게 되었다. 양재천과 탄천이 만나는 곳에 여울이 세차게 형성되어 한여울·반포 등의 지명이 유래되어, 여기서 학여울·개포 등의 전이된 이름이 생겨났다.

양재대로가 동서로 가로지르고, 선릉로·영동대로 등과 지하철 분당선이 통과하여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1980년부터 개포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저층아파트와 고층아파트가 건설됨으로써 강남의 신흥 아파트단지로 발전하였다. 고인고개에는 4개의 고인돌이 있었다고 한다.

  1. 세곡동(細谷洞)

강남구의 남동 끝에 있는 동이다. 대모산 서쪽 기슭에 위치하여, 동쪽은 송파구 장지동, 서쪽은 서초구 내곡동, 남쪽은 경기도 성남시 신촌동, 북쪽은 율현동·자곡동과 접해 있다. 자연마을인 세천리와 은곡동이 합해져 세곡동이 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면서 송파출장소 관할의 세곡동으로 되었고, 1975년 강남구에 속하게 되었다. 동의 많은 지역이 그린벨트로 지정되어 있어 한적한 전원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점차 고급 주택지로 변하고 있다. 마고개[馬峴]에 도당(都堂)터가 있어 도당뫼라 불리고 있다. 밤고개길이 헌릉로와 만나며 성남시로 이어지는 로터리를 형성하고 있다.

  1. 자곡동(紫谷洞)

강남구의 남동쪽 끝에 있는 동이다. 동쪽은 송파구 가락동, 북쪽은 수서동, 서쪽은 서초구 내곡동, 남쪽은 율현동과 접해 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어 송파출장소 관할구역이 되었다가, 1975년 강남구가 신설되어 이에 속하게 되었다. 자곡이란 지명은 자연마을인 자양동(紫陽洞)과 지곡동(池谷洞)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1987년 취락구조 개선사업 실시로 옛집은 거의 헐리고 현대식 주택으로 탈바꿈하였다. 그린벨트 속의 전원주거 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도당(都堂)에서는 동제를 지내고 있다.

  1. 율현동(栗峴洞)

강남구의 남동쪽 끝에 있는 동이다. 북쪽은 자곡동, 남쪽과 서쪽은 세곡동, 동쪽은 탄천을 건너 송파구 가락동과 접해 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어 송파출장소 관할이 되었으며, 1975년 강남구가 신설되어 이에 속하게 되었다. 율현이란 지명은 조선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유상운(柳尙運)이 심은 밤나무가 많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동 가운데로 밤고개길이 지나는데, 방죽말에는 방죽 제1·2공원이 있으며, 탄천 쪽에는 덕암사가 있다.

  1. 일원동(逸院洞)

강남구의 남동쪽에 있는 동이다. 대모산 북쪽 기슭에 있으며, 동쪽은 수서동, 서쪽은 개포동, 남쪽은 서초구 내곡동, 북쪽은 탄천을 경계로 송파구 삼전동·석촌동과 접해 있다. 옛날 이 마을에 일원(逸院)이라는 서원이 있어 동명이 유래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어 송파출장소의 관할이 되었으며, 1975년 강남구 신설에 따라 이에 속하였다.

이 지역은 양재천 변의 기름진 농토가 많았으며,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단독주택 지역과 고밀도 아파트 혼합지역이 되었다. 대모산 기슭에 불국사가 있는데, 약사절이라고 한다.

  1. 수서동(水西洞)

강남구의 남동쪽 끝에 있는 동이다. 대모산 북쪽 기슭의 탄천 서쪽에 위치하여, 동쪽은 탄천을 경계로 송파구 문정동, 서쪽과 북쪽은 일원동, 남쪽은 자곡동과 접해 있다. 마을 서쪽에 강물이 흐른다 하여 동명이 유래되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면서 송파출장소 관할의 수서동이 되었고, 1975년 강남구가 신설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택지개발사업에 의해 고밀도 아파트 지역으로 변모하였으며, 광평로·양재대로와 밤고개길이 만나는 곳에 수서입체교차로가 있고, 지하철 3호선 종점인 수서역이 분당선과 이어져 있으며, 강남구와 평택시를 연결하는 수서평택고속선의 수서역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이 지역은 세종의 5남인 광평대군과 그 자손들의 묘소 등 700여 기 묘소·재실 및 종택인 전통한옥이 있어 궁말이라 부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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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행정변천고」(나각순, 『향토서울』46, 1988)
강남구청(www.gangnam.go.kr)
관련 미디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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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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